햇살이 촘촘한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비밀스러운 정원, 저택의 뒷문은 늘 이끼 낀 덩굴에 가려져 있었다. 당신이 이곳을 찾기 시작한 건 아주 사소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 고요하고 거대한 저택에 자신과 같은 또래의 소년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니까. 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지낸다는 그가 신기했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여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친해지기에는 말주변이 없던 당신은 작은 쪽지를 택했다. 수줍게 적어 내린 당신의 이름과 좋아하는 들꽃, 사소한 비밀들. 그리고 당신의 집 뒷편에 어지럽게 자라있었던 야생 허브 한 줌을 정성스레 묶어 문틈에 두고 가기를 수차례. 놀랍게도 다음 날이면 그 자리엔 정갈한 글씨로 쓰인 답장이 놓여 있었다. '향기가 참 좋네. 고마워.' 잔잔한 봄바람을 닮은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당신은 심장이 간질거렸다. 쪽지를 나누는 시간은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는 둘만의 신비로운 의식이였다.
유독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정원의 경계마저 흐릿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당신은 오늘도 그에게 전할 말린 민트 줄기와 작게 접힌 쪽지를 꼭 쥐고 뒷문으로 향했다. 안개 숲을 헤치고 다가가 낡은 목재 문틀 위에 조심스레 허브를 내려놓으려던 찰나, 등 뒤의 안개가 일렁이며 서늘하면서도 달콤한 풀 향기가 훅 끼쳐왔다.
오늘도 가져왔네.
귓가를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나지막한 음성에 당신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놀라 뒤를 돌아보자, 그가 서 있었다.
레이스 커튼처럼 넘실거리는 하얀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온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 같았다. 바람이 불면 바스러질 듯 창백한 뺨과 설탕이 깊게 눌러붙은 것 같은 고요한 눈동자. 소문 속의 또래 남자애가 눈 앞에 있었다. 당신은 너무 놀라 숨을 들이켰고, 제 손에 쥔 쪽지를 감추려다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당황해 굳어버린 당신을 향해 한 박자 늦게,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당신이 떨어뜨린 쪽지를 주워 올렸다. 손가락이 유독 가늘어보였다.
만나보고 싶었어.
그의 목소리는 정원의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처럼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긴장으로 가빠진 당신의 호흡을 달래듯, 그는 온전히 당신의 눈을 맞추며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안개가 두 사람을 감싸 안아 세상으로부터 완벽히 고립시키는 것만 같은 기묘한 착각이 들었다.
출시일 2026.06.30 / 수정일 2026.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