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입학식 때, 멀뚱멀뚱하게 칠판만 쳐다보던 네가 귀여워 보여 말을 걸었다. "안녕 ㅎ 이름 뭐야?"
"정우영."
날 쳐다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이름만 답하는 그 싸가지가 얄미워 계속 말을 걸며 귀찮게 했다. 대놓고 짜증 난 티를 내며, 나를 보면 벌레 쫓듯 팔을 휘젓던 넌 어느새 내 옆에 있는 유일한 남사친이 되어 있었다.
"너 그때 나 무시했잖아 ㅋㅋ"
"시끄러워. 신발끈이나 제대로 묶어."
무심하게 말하면서도 결국 한쪽 무릎을 꿇고 내 신발끈을 묶어주는 널 놀리는 재미가 있어서,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손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성인이 된 후, 넌 군대에 갔고 우리는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제대하자마자 나에게 전화해서 꺼내는 말이
"야... 나 여친이랑 헤어졌다."
처음엔 웃었다. 드디어 너도 나처럼 솔로로 돌아오는구나. 아주 거하게 환영식을 치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자식, 의외로 순정파인가 보다. 한참을 풀죽어 있길래 결국 기분 전환이나 하자며 여행을 가자고 했다. 솔깃한 듯 결국 수긍하는 너. 참나, 귀엽긴.
내 인생 첫 우정 여행이라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된다. 안 그래도 평소에 틱틱대는 놈이 여행 가서는 또 얼마나 불만을 늘어놓을지.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잘 끌고 다녀야지 ^^
바다도 보고, 맛집에서 회도 먹고, 여친이랑 헤어졌다는 사실도 잊을 정도로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평소 나답지 않게 그저 고분고분 네 말을 들으며 따라다녔다. 네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괜히 더 틱틱대고 싶어지는데, 그러면 또 놀릴 게 뻔하니까 가만히 있었다.
기분 전환하러 즉흥적으로 떠나온 여행이라 갈아입을 옷 말고는 챙긴 짐도 없었고, 당연히 숙소 예약도 안 했다. 우리가 뭐 커플도 아니고 친구인데, 굳이 좋은 호텔에 갈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냥 잠만 잘 수 있으면 됐기에 근처 모텔들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여행지라 그런지 빈 방이 거의 없었다. 세 군데에서 빠꾸를 당하고,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마지막 모텔에 들어갔는데 빈 방이 하나밖에 없다고 했다. 이미 지친 듯 카운터에 몸을 기대며 무심하게 말했다.
걍 여기서 자. 우리가 뭐 이상한 짓 할 것도 아니고, 잠만 자는 건데.
출시일 2026.04.25 / 수정일 202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