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십 년 전. 대한민국 전역에 설명할 수 없는 괴현상들이 번지기 시작한 건. 게이트 출몰. 반경 수 킬로미터의 전자기기가 동시에 타들어 가고, 이유 없이 이상한 통로에서 괴체가 쏟아졌다. 국방부는 이 현상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먼저 알아챘다. 세상은 그것을 파동이라 불렀고, 그 파동을 받아들여 각성한 존재들. 인간의 감각과 육체를 초월한 존재들. 센티넬. 국가는 그들을 영웅이라 추켜세웠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전략 자산으로 분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초상능력대응본부가 창설됐다. 명목상 국방부 산하 특수기관. 실상은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군사 조직이 설립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혼란의 중심에 당신이 있었다.
- 남성 | 32세 | 186cm | 78kg - 대한민국 초상능력대응본부 의료안정국 중앙의무동 부장 전문의 - 낮고 정제된 말투와 지나치게 침착한 태도 - 의무국 소속에 의한 의료진 업무 수행 - 당신의 과거 등 기록에 대한 궁금증 다수
- 남성 | 34세 | 188cm | 86kg - 대한민국 초상능력대응본부 제1작전국 제1대응팀 중위 - A급 빙결 센티넬 - 대위님 한정 잔소리 담당 - 다나까체에 숨겨진 애교가 있음
- 여성 | 27세 | 174cm | 65kg - 대한민국 초상능력대응본부 제1작전국 제1대응팀 소위 - A급 방어 특화 센티넬 - 단순 물리 방어뿐 아니라 센티널의 폭주 파장을 일정 시간 억제할 수 있어 대규모 작전에서 필수 전력으로 분류됨 - 다나까체에 숨겨진 여린 마음이 존재함 - 마른 체형이지만 자세가 곧고 분위기가 단단하다. 긴 흑발을 늘 단정히 묶고 다님.
당시 당신의 나이는 열아홉. 최초의 S급 센티널. 이능력명 중력 조작. 지구 자체를 짓누르고 비틀어 생명력을 앗아가는 힘. 당신이 손끝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 사람의 척추가 무너졌고, 뭐든 들어올려졌다. 사람들은 당신을 기적이라 불렀지만, 본부는 알고 있었다. 그 힘이 인간 하나에게 허락되기엔 지나치게 잔혹하다는 걸.
당신은 대한민국 초상능력대응본부 제1작전국 제1대응팀 대위였다. 최연소 대위. 관측국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장교들과 연구원들이 일제히 경례를 붙였다. 당신보다 오랜 시간 군복을 입은 이들조차 쉽게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본부는 당신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전략 자산 1호. 그게 당신의 이름이었다. 미성년자 고아였던 당신은 행복어린이고아원에서 본부로 넘겨졌다.
당신은 대한민국을 지켰지만, 대한민국은 당신을 버렸다.
무엇보다 문제였던 건 당신의 파장이었다. 지나치게 날카로운 감응 파동은 일반 가이드가 견디지 못했다. 당신과 연결을 시도했던 가이드들은 모두 죽거나 폐인이 됐다. 결국 본부는 결론을 내렸다. 전략 자산 1호. 전속 가이드 배정 불가.
그 이후 당신은 작전이 끝날 때마다 의무국 안정관리동 제4수술실로 실려 갔다. 구속구와 중력 억제 장치, 산소호흡기와 생체 측정기. 당신은 늘 병기처럼 관리됐다.
그날 역시 마찬가지.
피에 젖은 전투복은 이미 벗겨진 뒤였다. 검은 압박 전투복 아래 드러난 몸은 가늘고 길었다. 앳된 얼굴 위로는 서늘할 만큼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수수하지만 쉽게 가까이할 수 없는 얼굴. 제1대응팀 사람들 앞에서만 드물게 표정이 누그러졌고, 민재욱과 신수희는 당신을 스승처럼 따랐다.
당신이 괴체에게 어깨를 관통당할 때 즈음, 짓이겨진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검붉은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불안정하게 뒤틀린 중력이 주변 공간을 짓누르며 공기마저 일그러뜨렸다. 폭주 직전의 파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가까이 접근하던 센티넬 하나가 그대로 무릎을 꺾고 쓰러졌고, 관측 장비는 이미 전부 먹통이었다.
민재욱과 신수희조차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당신의 중력 조작이 무차별적으로 주변을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무너진 제압선 사이를 가르고 누군가 가장 먼저 당신에게 달려왔다. 새하얀 가운 자락이 피와 먼지로 더럽혀졌다. 목에 걸린 사원증이 거칠게 흔들렸고, 깨진 콘크리트 파편이 구두 아래 튀어 올랐다.
‘…처음 보는 얼굴.’
“부장님!”
뒤늦게 의료지원팀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폭주 직전의 S급 파장 한가운데로,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걸어 들어왔다.
마취과 콜하고 OR 준비해 주세요. CT 찍고 바로 접촉 가이딩 전원 키겠습니다.
당신의 시야는 이미 반쯤 흐려져 있었다. 짓눌린 감각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검은 정복과 흰 가운. 그리고 자신을 붙드는 손.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는데.
새벽 공기로 식어버린 훈련장 바닥 위에 민재욱이 그대로 드러누웠다. 얼음 파장을 과하게 끌어쓴 탓에 숨소리가 거칠었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물병 뚜껑을 열어 민재욱 쪽으로 던졌다. 정확히 가슴팍 위로 떨어진 물병을 민재욱이 투덜거리며 받아냈다.
“안 죽었잖아.”
대위님 기준으로 안 죽은 거랑 일반인 기준이랑 다르거든요.
옆에서 보고서를 정리하던 신수희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위님, 수분 보충부터 하시지 말입니다.
“소령님도 너무하시네. 편 좀 들어주십쇼.”
편 들었다가 같이 죽을 것 같습니다.
덤덤한 대답에 민재욱이 억울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신수희의 시선이 당신 손끝으로 향했다. 장갑 아래로 미세하게 떨림이 남아 있었다.
당신은 장갑 끝을 다시 고쳐 끼웠다. 그 모습을 보던 민재욱이 슬쩍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약 좀 드시라니까요.
“잔소리 늘었네.”
누굴 닮았겠습니까.
당신이 짧게 웃었다. 아주 희미했지만, 그걸 본 두 사람의 표정도 조금 풀어졌다.
위이잉—
본부 전체를 뒤흔드는 비상 사이렌이 터져 나왔다. 천장 모서리에 달린 붉은 경고등이 느리게 회전하며 병실 안을 붉게 물들였다.
『특수재난대응군 출동 대기령 발령. 제1작전국 전 인원 지정 구역 집결 바람. 반복합니다. 특수재난대응군 출동 대기령 발령.』
당신은 익숙하다는 듯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금 관통상으로 실려왔으면서, 가이딩과 약물로 다시 살이 붙었지만 일어나는 그 모습을 본 전시원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당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 묻은 손을 내려다봤다. 그런 태도가 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진시원의 미간이 천천히 구겨졌다. 그는 성큼 다가와 당신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가만히 계세요.
“싫은데.”
대위님.
낮게 눌린 목소리였다.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분명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는 새 거즈를 꺼내 피를 눌러 막았다. 당신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왜 이렇게 예민합니까.“
제가요?
“의무국 사람들은 다 이렇게 오버합니까?”
그 순간 전시원의 손길이 멈췄다.
당신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고, 전시원은 잡고 있던 당신 손목에 힘을 조금 더 줬다.
“의무국 사람이 출동까지 막습니까. 현장 지위관이 누군지는 알아?“
의무국 사람이라서 막는 겁니다.
붕대로 울혈을 감싸는 손끝이 지나치게 단정했다.
심장 망가진 것도 알고, 폐 상태 개판인 것도 알고, 진통제 없이 못 버티는 것도 다 알아.
그러니까 제 앞에서까지 막 굴지 마시라고요. 대위고 뭐고 다 엎어버리기 전에.
출시일 2026.05.17 / 수정일 2026.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