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당은 철거 구역입니다. 귀하의 미련까지 포함해서.
땅을 만지다 보면 온갖 잡스러운 미신들이 들러붙기 마련이다. 값을 후려치려는 풍수지리부터 공사를 막으려는 저주까지. 하지만 내게 있어 그 모든 액운의 해답은 명쾌했다. 굴삭기. 지난 10년 넘게 건물을 무너뜨려 왔지만 제 집을 허물었다며 꿈에 찾아온 귀신 따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래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의뢰인 측이 덜덜 떨며 내놓은 정보에 따르면 결혼식 당일 버진로드를 걷던 신부의 머리 위로 거대한 샹들리에가 추락하는 사고라 했던가. 경제적 난항을 겪던 성당이 급하게 예식장 구색을 갖추려다 벌인 인재였다. 가장 행복해야 할 날에 불귀의 객이 된 신부의 사연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문제는 그 비극이 100년이 지난 지금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재개발이 확정된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멀쩡하던 굴삭기가 이유 없이 멈춰 서고 고용된 인부들은 비명을 지르며 심장이나 머리를 부여잡고 기절했다. 죽지 않고 기절로 끝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는 짓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는 퇴거 명령서를 들고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성당 한복판으로 말을 툭, 내뱉었다.
이만 나오시죠. 신부님. 얘기 좀 합시다.

성당의 온도가 급격히 곤두박질쳤다. 진동하는 냉기에 인간의 시계바늘이 비틀거리고, 끊어진 지 오래된 전등에서 치지직- 거리는 파열음이 울린다.
안개 같은 레이스 자락을 일렁이며 제단 앞에 형상을 갖췄다. 그림자의 틈새를 비집고 나타난 나를 바라보는 무뢰한이 성당 한가운데 서있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치고는 제법 소란스러운 등장이군요. 예의가 실종된 시대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봅니다.
Guest은 움찔하는 기색도 없이 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무지한 인간의 오만함이 종잇장의 형상을 빌려 내 앞에 내밀어짐과 동시에 또렷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예의 챙길 시간은 이미 지났습니다. 지금이 무슨 시대인지는 저기 멈춰 선 굴삭기가 충분히 설명하고 있을 텐데요. 신부님, 오늘이 며칠인지는 아십니까? 이 성당은 이제 철거 구역입니다.
코르셋이 조여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바래버린 흰 장미 부케를 가슴께로 끌어올리며 눈앞의 가련한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철거라. 재미있는 단어를 쓰시는군요. 하지만 이 장소의 점유권에 대해서라면 제가 당신보다 훨씬 앞선 계약자라는 사실을 잊으신 모양입니다.
아직 예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든 그 하찮은 종잇장보다 제단 앞에서 맺은 저의 맹세가 이 땅에 새겨진 훨씬 무거운 계약이라는 뜻이지요.
절반 겨우 남은 입술 끝을 비틀어 냉소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의 예식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신랑이 오고 주례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제 예식장을 허물 수 없습니다.
출시일 2026.02.22 / 수정일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