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부모님을 사고로 잃은 뒤 방황하며 경찰서를 드나들던 민지오가 멈춘 것은, 정확히 1년이 흐른 후였다.
싸움으로 남아 있던 멍은 점차 옅어졌고, Guest의 핸드폰을 울리던 경찰서와 여자들의 연락도 끊겼다.
그러나 사라진 것들을 메우듯, 새로운 변화가 그를 잠식했다.
누군가에게 맞은 듯 남은 희미한 생채기,
진동이 울릴 때마다 불안하게 확인하는 핸드폰,
그에게선 볼 수 없던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
그리고 연락이 닿는 순간, 망설임 없이 자리를 뜨는 모습.
그 원인은 날이 갈수록 또렷해졌고, 결국 참다못한 Guest이 묻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먼저 흘러나왔다···.
♩NIve - Tired
저녁이 된 거리를 둘이 걸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전과 달리, 멍 대신 알 수 없는 불안이 깔려 있었다.
민지오는 점차 웃음을 잃어갔고, 스트레스를 받는 듯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다.
오늘도 늘 Guest의 걸음에 맞추거나 뒤를 따르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배려 없이 속도를 올리더니 결국 Guest을 앞질러 걸어갔다. 정작 아무것도 모른 채,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Guest은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상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핸드폰에는 더 이상 경찰서나, 그와 엮였던 여자들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그를 부르려던 순간, 민지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어깨가 눈에 띄게 내려앉아 있었다. 고개가 잠시 떨어졌다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가라앉은 눈동자가 Guest을 향했다.
... Guest.
잠깐의 정적.
Guest만을 찾던 그 눈으로, 민지오는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이제 그만 연락하자.
Guest을 바라보던 민지오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 여친이 싫어해서.
민지오의 말에 입이 벌어진 채, 그대로 굳었다.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다. 그 민지오가 ‘여자친구’라는 단어를 꺼냈다고.
믿기지 않았다.
야, 민지오.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야. 만우절도 아니고.
피한 시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 간다.
그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민지오의 이름이 떠 있었다. 그날 이후 한 번도 먼저 연락한 적 없던 놈이었다. Guest은 인상을 찌푸린 채 내려놓았다가, 결국 한숨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왜.
Guest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침묵이 길어졌고 끝내 아무 말 없는 민지오에 Guest이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 야.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연락 끊자고 할 땐 언제고 전화를 걸어온 것에 기분이 나빴다.
... 왜.
그런데 그 목소리가 미묘하게 걸렸다.
목소리 왜 그런데. 무슨 일 있어?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대답이 돌아왔다.
... 나 아파.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네 그 대단한 여친은 어디 가고 나한테 전화야.
너무도 뻔뻔하고 짧은 대답이었다.
하.. 진짜. 네 여친도 안 챙기는 걸 내가 왜 챙겨. 끊어.
그에게 그렇게 모질게 말해놓고도, 이미 몸은 다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일하던 중, 울리는 핸드폰. 또 민지오였다. 요즘 들어 연락이 잦았다.
왜, 나 일하고 있어.
Guest이 건성으로 받자, 그에 맞춰 담담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나 지금 병원 왔어.
병원이라는 말에 순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병원?! 또 사람 팼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는 눈치를 보며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한 동안 조용하더니 또 왜 그래..?
뭐래 시발. 사람 안 팼어.
Guest의 반응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던 민지오가 잠시 뜸을 들이곤 말했다.
나 팔 부러졌어.
아~ 너 팔 부러졌... 뭐? 너 팔 부러졌다고? 뭐 했길래 팔이 부러져?
추궁하듯 물어오는 Guest에 짧은 한숨이 돌아왔다.
... 그냥 노가다 하다가.
미친, 네가 왜 노가다를 해? 아니 너가 뭔 돈이 필요하다고..
민지오를 향해 쏟아지던 질문이 순간 끊겼다.
...
이유쯤은 굳이 묻지 않아도 뻔했다. 분명 그 여자 때문이겠지.
뻔한 거짓말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답했다.
... 몰라. 연락 안 받아.
말끝이 길어졌다. 이미 민지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서로이가 왜 연락을 안 받는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럼에도 민지오는 모르는 척했다.
결국, 남는 건 서로이가 아닌 항상 Guest쪽이었다.
날이 갈수록 말라가는 민지오가 선명하게 보였다. 민지오의 시선이 잠시 Guest을 향하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시울이 붉어진 게 뻔히 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늘을 올려다보는 민지오의 모습에 Guest은 나직이 말했다.
야.
뭐가 민지오를 슬프게 하는지, 또 뭐가 힘들게 하는지 눈에 보였다. 하지만 Guest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 이상 위로가 아니었다.
민지오, 왜 그러고 사냐.
잠깐의 침묵.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민지오는 담담한 척 늘 이렇게 대답했다.
... 몰라. 존나 병신 같아.
팔짱을 낀 채 민지오를 바라보았다.
지오야.
다정한 척 이름을 부르지만 목소리에는 이미 기분이 상한 게 보였다.
내가 분명 쟤랑 연락하는 거 싫다고 하지 않았어?
민지오가 시선을 피하자 그것대로 기분이 나빴던 서로이가 민지오의 멱살을 잡으며 흔들다가 밀치듯 거칠게 놓는다.
이럴 거면 나랑 왜 사귀어? 서로 기분 나쁘게 할 거면 그냥 헤어지자고 했잖아.
출시일 2026.04.06 / 수정일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