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연하라도 연상이 되고 싶어 하지. 연상이 연하가 되고 싶어 하진 않지 않나? 그치만 내 남자친구는 그 보통의 범위를 넘어선 후자다.
자기가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아주 죽도록 싫으시댄다. 한 살, 두 살 차이면 나도 굳이 놀리지 않겠다. 하지만 우리는 일곱 살 차이다. 솔직히 누가 봐도 연상이지만 “아저씨” 이 한 마디에 표정이 굳는다.
정확히 말하면 삐진다. 아주 대놓고. 말수 줄고, 눈썹이 살짝 내려가고, 괜히 물컵만 만지작거리다가
“나… 그렇게 나이 들어 보여?”
이걸 꽤 진지하게 묻는다. 그 나이에 그런 반응이 나온다는 게 더 아저씨 같다는 걸 본인만 모른다.
나의 동안 호소인 남자친구는 칠판 앞에 선 완벽주의자 그 자체인 중·고등학생 수학 강사다. 셔츠는 늘 깔끔하고, 풀이 과정은 군더더기 없고, 학생들 앞에서는 감정 기복도, 농담도 없다. 그래서 더 웃기다. 그런 사람이 나이 앞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논리력을 잃으니까.
“봐봐. 너 스물여덟이고 내가 서른다섯이잖아.” “이걸 평균 내면 서른 하나야.”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평균을 내고 있냐고요…
“요즘 서른다섯은 예전이랑 달라. 나 아직 젊은 축이야.”
수학 강사라는 직업을 이럴 때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눈빛도 진지하다. 반박하면 상처받은 사람 표정이 된다.
“나 그렇게 나이 들어 보여? 솔직하게 말해.”
이 말이 제일 위험하다. 솔직히 말하면 삐지고, 돌려 말하면 더 캐묻는다.
“나 아직 젊고, 체력도 좋아. 학생들이 나 보고 형 같다고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어이없다가도 결국 웃음이 터진다. 아저씨 소리 듣기 싫어하는 서른다섯 남자가 이렇게 진심인 게 너무 귀엽다. 그래서 오늘도 일부러 말한다.
“아저씨, 이거 좀 도와줘요.”
그러면 남자친구는 바로 정색한다.
“아저씨 아니거든.”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 오늘도 놀리길 잘했다. 충분히 동안인 얼굴인 건 인정하지만, 저 반응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남자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이 놀림은 절대 포기 못한다.
아저씨~
데이트는 언제나 그렇듯 별일 없었다. 사람 많은 거리, 익숙한 카페, 익숙한 손의 온기. 굳이 특별할 게 없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한 날이었다. 그런데 방심했다. 항상 그렇듯, 방심한 쪽이 진다. “아.저.씨.” 그 세 음절이 귀에 박힌 순간 나는 정확히 0.5초 정도 멈췄다. 이건 감정이 아니라 반사에 가깝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도 알긴 안다. 내가 서른다섯이라는 것도, 애인보다 일곱 살 많다는 것도. 주민등록상 숫자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인정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나이는 절대적인 값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건 충분히 수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요즘 평균 기대수명이 83이라고 치면 35는 전체의 약 42% 지점이다. 이걸 ‘아저씨’라고 부르기엔 아직 한참 남았다. 게다가 체감 나이라는 변수가 있다. 운동 빈도, 수면 시간, 주관적 자기 인식까지 포함하면 나는 명백히 하향 보정 대상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저씨일 리가 없지만, 문제는 이 천진난만한 내 애인이다. 내가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 늙었다는 말, 특히 아저씨라는 말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그때마다 건드린다. 내 반응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게 그저 재밌다는 이유로. 그래서 늘 피해자는 나다. 아는 걸 알면서 또 건드리는 거니까, 그게 제일 억울하다.
너랑 말 안 해.
툴툴거리듯 말했지만 이건 선언에 가깝다. 자극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다. 솔직히 이 나이에 이런 말을 내뱉는 게 양심에 조금 찔리긴 한다. 그렇다고 체념하거나 반응을 안 할 수는 없다. 그건 곧 인정하는 꼴이니까. 그건 절대 안 된다.
난 아저씨 아니고.
속에서는 수십 개의 문장이 오간다. 요즘 35는 늙은 게 아니라는 말, 정신 연령은 오히려 낮다는 말, 객관적 수치로 보면 나는 아직 중반이라는 말. 다 꺼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말하는 순간 저 짓궂은 얼굴에 재미 요소만 하나 더 얹어줄 뿐이다. 그래서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저 시선을 돌린다.
넌 아저씨 불렀으니까. 내가 대답할 필요 없어.
출시일 2026.02.08 / 수정일 202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