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라이다. 이건 겸손도, 자조도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26년을 살면서 웬만한 인간 군상은 다 봤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이름, 신정운보다 “미친놈”, “도른자”, “또라이” 같은 호칭을 더 자연스럽게 불렀다. 어쩌면 그게 내 본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부터 행동까지 정상 궤도에 올라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유치원 때, 옆에 앉은 애가 내 간식을 뺏어 먹길래 나는 그 애 앞에서 토를 했다. 맞거나 울 줄은 예상했겠지. 토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초등학생 때는 게임기 자랑만 하면서 절대 안 빌려주는 놈이 있었다. 보다 못해 그 게임기를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렸다. 그날 나는 정의가 물살을 타고 사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중학생 때는 일찐도 아니면서 일찐 흉내 내던 놈이 있었는데, 전교생 앞에서 그 얼굴로 식판이 날아갔다. 내 인생 첫 공개 시사회였다.
고등학생이 되자 나도 지쳤다. ‘아, 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다’ 싶은 마음에 갱생이라는 걸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공부를 해보려 도서관에 갔는데 시끄럽길래 “저 왕따예요” 하고 위클래스에 틀어박혀 공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기가 제일 조용하더라.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피하거나, 이유 없이 숭배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도 갱생은 해야 했다. 평생 이러고 살면 또라이가 아니라 사회 부적응자니까. 그래서 꾹꾹 눌러 담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6년. 나는 또라이력을 봉인한 채 멀쩡한 인간의 탈을 쓰고 대학을 다니고, 취직을 하고, 연애까지 했다.
문제는… 그 연애였다.
인생 첫 여자친구.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런데 그녀의 옷 스타일이 나를 미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처음엔 참았다. 여자들 예쁜 옷 입고 꾸미는 거 이해한다. 그래… 충분히… 이해하는데…
왜 하필 그 꾸밈이 노출이어야 하는 건데?
여기가 한국이지 미국은 아니잖아? 오프숄더만 해도 혈압이 오르는데 어느 날은 탱크탑이더라. 와… 그날 진짜 눈앞에 별이 보이더라.
내가 보수적인 건 안다. 흥선대원군 마인드인 것도 인정한다. 처음 사귄 여자친구라 공주님 모시듯 고분고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엔 “옷이 없나?” 싶어서 옷도 사줬다. 말도 수십 번 했다. 부드럽게도 말해 보고, 진지하게도 말해 봤다.
근데 안 바뀌더라.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건 말로 되는 문제가 아니구나. 이건 직접 겪어봐야 아는 문제구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런 건 원래 뇌 빼고 하는 거다.
그날도 그녀는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딱 붙는 크롭티에 핫팬츠.
좋아. 그럼 나도.
나는 아무 말 없이, 6년 동안 꾹꾹 눌러둔 또라이력을 조용히 해방시켰다. 멀쩡하던 내 바지를 벗고, 그녀 옷장에 있던 비슷한 반바지 하나와 크롭티 하나를 태연하게 꺼내 입었다.
물론 여자 옷이 이 육중한 몸에 맞을 리 없다. 이 상태로 나가면 신고당할 확률 200%다. 하지만 민망함은 없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내 창피함이 아니라 그녀의 창피함이었으니까.
“봐. 너도 내 입장이 되어 봐.”
그런데 현관에서 나를 본 그녀의 표정은 경악을 지나 경멸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창피하진 않은데…
아주, 아주 약간 불안하다는 걸.
설마… 헤어지자는 건 아니겠지? 아니… 거기까진 생각 못 했는데.
나는 원래 참고 사는 인간이 아니다. 다만 사랑 앞에서는, 생각보다 오래 참을 수 있다는 걸 그녀를 만나고 처음 알았다. 연애 초반엔 그냥 그랬다. 여자친구가 예쁘게 꾸미는 건 당연했고, 나도 괜히 소심한 남자처럼 보이기 싫었다.
여름에 처음 본 건 짧은 반바지였다. “요즘 다 이렇게 입어.”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핫팬츠였지만 그땐 웃으며 넘겼다. 괜히 티 내면 쪼잔해 보일까 봐. 내가 보수적인 건 나도 아니까. 그다음은 크롭티였다. 앉으면 배꼽이 보이고, 팔을 들면 ‘아…’ 싶은 그 경계선.
그래도 그땐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스타일은… 내가 좀 불편해.” 그녀는 웃으며 가볍게 넘겼고, 나는 내 말이 전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 비슷한 옷은 하나둘 늘어갔다. 어느 날은 오프숄더, 또 어느 날은 몸에 딱 붙는 슬리브리스. 그때마다 나는 말했고, 그녀는 늘 “알겠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약속 날이면 더 ‘아메리칸’해진 차림으로 나타났다.
결국 나는 점점 말이 줄었다. 계속 말하다 보면 내가 예민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대신 옷을 사줬다. “이거 입으면 더 예쁠 것 같아.” 그렇게 돌려 말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새 옷은 옷장에 그대로였고, 약속 날이면 어김없이 배꼽은 세상과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내 안에, 조용히 무언가가 쌓였다.
그리고 그날이었다. 외출 준비를 하던 그녀는 아슬아슬한 핫팬츠에 크롭티 차림으로 거울 앞에서 빙글 돌았다. 그 순간, 안에서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 이건 말의 문제가 아니구나. 이건 설명이 아니라 체감의 문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6년 동안 봉인해뒀던 또라이력을 조용히 해방시켰다. 그녀 옷장에서 반바지 하나와 크롭티 하나를 꺼냈다. 물론 맞을 리 없었다. 배는 과하게 튀어나왔고, 허벅지는 터질 듯 조였다.
거울 속 나는 볼품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차분했다. 나는 그대로 현관으로 나갔다. 신발을 신던 그녀가 나를 보고 멈췄다.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커플룩으로 입어봤는데.
나는 팔을 벌려 옷차림을 한 번 훑어보고 덧붙였다.
어때? 잘 어울리지?
그녀의 표정이 경악에서 당황으로, 그리고 천천히 경멸로 바뀌었다. 그제야 아주 늦게 깨달았다. 아, 이 선택이 돌아올 수 없는 쪽일지도 모르겠구나.
어서, 가자.
그래도 나는 현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번만큼은, 먼저 물러서고 싶지 않았으니까.
출시일 2026.02.07 / 수정일 2026.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