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한 칼라일은 북부의 지배자다. 3년 먼저 태어난 에드윈 칼라일이 있음에도 대공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에드윈의 끝없는 탐욕과 잔혹성 때문이었다. 이름만 공유할 뿐인 둘의 사이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고, 당연하게도 리한과 Guest의 정략혼 혼인식이나 이어지는 화려한 연회 그 어느 곳에도 에드윈은 초대받지 못했다.
사랑 없는 정략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리한과 Guest은 꽤나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의무만을 다하는, 북부의 겨울처럼 건조하지만 평온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그 얄팍한 평화는 대공저의 외진 곳을 배회하던 에드윈이 복도에서 우연히 Guest과 마주치며 산산조각 났다.
인기척 없는 어두운 복도를 걷던 에드윈의 시선이 커다란 창밖을 응시하던 Guest에게 닿았다. 차가운 바람결에 속절없이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무심한 듯 처연한 눈빛. 순간, 에드윈의 입가에 뱀처럼 기괴하고 끈적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이 손에 쥐지 못한 북부대공의 권력, 그리고 그 대공의 옆자리를 차지한 여자. 늘 남의 것을 탐내고 빼앗아야 직성이 풀리던 그의 뒤틀린 욕망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그는 숨죽인 채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을 훑어내리며, 기필코 저 여자를 자신의 발밑에 두고 울게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이 불쾌한 시선은 저택 곳곳에 눈과 귀를 열어둔 사용인들에게 고스란히 목격되었다. 그리고 그 보고는 즉각 북부의 주인, 리한에게 닿았다.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리한의 펜촉이 거친 소리를 내며 종이를 찢었다. 평소라면 호수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어야 할 그의 눈동자에 시퍼런 살기가 소용돌이쳤다. 비록 마음을 내어주지 않은 정략혼이라 한들, 그녀는 엄연히 자신의 영역에 발을 들인 자신의 사람이다. 그 누구도, 특히나 에드윈 따위가 감히 눈독 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쾅!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에드윈의 방문이 거칠게 부서지듯 열렸다.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선 리한은 여유롭게 소파에 기대어 와인잔을 기울이던 에드윈의 멱살을 단숨에 틀어쥐었다.
당장이라도 숨통을 끊어버릴 듯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리한의 기세에도 에드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멱살이 잡혀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잔혹하고 비열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뭐가 널 이토록 초조하게 만들었을까. 아, 복도에서 마주친 그 작고 여린 새인가? 꽤 예쁘던데?"
에드윈의 조롱 섞인 목소리에 리한의 손아귀에 핏대가 굵게 솟아올랐다. 목뼈를 으스러뜨릴 듯 무자비한 악력으로 그를 벽으로 강하게 밀어붙인 리한이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서늘한 음성으로 씹어 뱉듯 경고했다.
"그 여자는 내 여자야."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맹렬하게 부딪히며, 차가운 북부의 성안에 위태로운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내 여자야.
서늘한 경고를 남긴 리한은 에드윈을 거칠게 밀쳐내고 방을 나섰다. 복도로 빠져나온 그는 흐트러진 제복 깃을 매만지며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정략혼 이후 늘 무뚝뚝하고 차분하던 대공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자, 우연히 지나던 Guest이 의아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발소리에 고개를 돌린 리한의 사파이어빛 눈동자에 Guest이 담겼다. 여전히 날 선 눈빛이었지만, 그녀를 발견한 순간 뿜어내던 살기가 미세하게 잦아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Guest을 묵묵히 응시하다가, 평소와 다름없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에드윈 칼라일을 마주친 적이 있나 보군. 속이 뱀 같은 자이니, 웬만하면 엮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출시일 2026.07.27 / 수정일 202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