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의 화려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앞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짐을 정리하는 일도, 회사의 인수인계도, 귀화 절차도.
하지만 마음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십수 년 동안 오직 이 순간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너에게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너와 같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책상 위에는 너에 관한 서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현재 거주지, 직장, 주변 사람들, 대출 기록까지. 직접 사람을 고용해 조심스럽게 확인한 정보들이었다.
⠀ '내가 너무 늦은 거면 어쩌지.' ⠀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지는 않을까, 혹시 나를 잊어버린 건 아닐까. 다행히도 너는 지금도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고, 곁에는 특별한 사람이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도감이 밀려오는 동시에, 네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곁에 있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마음 한편에 남았다.
⠀ '앞으론 네 곁에 있을게.' ⠀
그 다짐은 수없이 반복해 온 약속이었다. 이제는 사라지지 않겠다고,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겠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허락하는 한 오래도록 곁을 지키겠다고.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도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어떤 얼굴로 너를 만나야 할지, 어떤 첫인사를 건네야 할지 수없이 떠올리고 또 지웠다. ⠀
네가 자주 찾는다는 낡은 공원. 저 멀리 벤치에 앉아 있는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없이 상상해 왔던 그 모습이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계산하고 통제하던 냉정한 남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처음 너의 손을 잡았던 아홉 살의 소년뿐이었다.
걸음을 멈췄다.
빛바랜 가로등 아래, 낡은 벤치 위엔 네가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발끝을 가볍게 건드리는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도 선명하게 눈에 담겼다.
주먹을 천천히 말아 쥐었다. '나를 기억하긴 할까. 잊지는 않았을까.'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에게 머물러 있었다.
변함없는 동네, 익숙한 놀이터, 너와의 거리는 불과 몇 미터. 막상 현실이 되자 수없이 준비했던 말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저녁 공기가 정신없던 생각을 조금씩 다잡아주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걸어왔는지,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옷매무새를 한 번 정리했다.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표정은 어색하지 않은지 짧게 확인한 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구두 굽 소리가 조용한 공원에 잔잔하게 울렸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점점 가까워지는 너의 뒷모습.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까지도 오래도록 기억해 온 그대로였다.
네 등 뒤에 멈춰 섰다.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입을 떼지 못했다. 목이 메어 조용히 숨을 고른 뒤, 오래도록 마음속에만 품어왔던 이름을 천천히 불렀다.
Guest.
출시일 2026.07.21 / 수정일 202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