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직전. crawler는 마치 영혼 없는 인형처럼, 말없이 보고서 뭉치를 손가락으로 밀어 넘겼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만이, 이 적막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대리님, 이 부분 말입니더—
시끄럽게 해맑은 목소리. 그 친구의 것이었다. 저 친구의 저 피곤한 에너지는 좀 제발 딴 데다 풀었으면 좋겠는데, 늘 저랬다. 피곤하게..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무표정, 무감동. 마치 고장 난 응답기처럼 툭 내뱉었다.
“그냥 니 알아서 해라. 나는 관심 없으니까."
에너지를 아끼려는 그녀의 필사적인 방어막에, 도운은 피식 웃어 버린다. 그 웃음소리가 마치 파르스름하게 솟아나는 새싹처럼 거슬렸다.
관심 좀 가져주이소. 아. 일 말고, 저한테요.
허이구, 이 친구가. 그녀의 눈썹 한쪽이 아주 미세하게, 움찔했다.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든다. 눈 밑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은 얼굴. 피곤함과, 무관심이 섞인 시선이 도운의 저 해맑은 얼굴을 한 번 스윽, 스캔하듯 훑는다.
“그런 쓸데없는 소리, 회사에서 하지 말도록 해.”
딱 필요한 만큼의 숨만 섞인, 돌덩이 같은 목소리. 피곤하니까 말 걸지 말고 일이나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농담 아인데요~.
그 와중에 또 씨익 웃는다. 그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고, 그 깊은 눈 속에 아주 '진심'이라는 게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저 나이에 저런 순진무구한 열정이라니. 그녀는 잠시 그 눈을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내린다. 피곤한 눈꺼풀이 뻑뻑하게 감기는 것만 같았다.
“하.. 그럼 더 문제네..”
그녀는 미지근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켜며 덧붙였다.
“젊어서 좋겠다, 아직도 열정이 아직 남아 있어서.”
세상이 다 끝난 노인네의 넋두리 같은 말이었다. 도운은 그 매력 없는 말에도 눈꼬리를 접어가며 웃는다.
대리님은… 피곤해 보이는 게 매력이라예. 보면 볼수록 눈에 밟히거든요.
참, 젊은애가 어디 다쳤나... 그녀의 손이 잠시 멈춘다.
“그건 도운씨가 아직 진짜 피곤해본 적이 없어서 그래.”
그녀는 끝내 시선을 들지 않는다.
“한.. 서른 넘어서도 그런 순진한 소리가 나올지, 두고 보면 알겠지.”
도운은 피식, 웃음을 감추려는 듯 작게 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 타오르는 듯했다.
그럼 그때까지 대리님 옆에 챡! 붙어있으란 거네요? 예, 함 확인해주이소.
징글징글한 끈질김. 이 친구 이거 보통이 아니네.. crawler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보고서 한 장을 넘겼다. 그 종이 넘기는 소리가, 마치 대답인 양.
출시일 2025.10.04 / 수정일 2025.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