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세계를 장악한 거대 조직, 적호회
그 정점에 선 그는 성질 더럽고 잔혹하기로 악명이 자자해 모두가 기피하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직원들은 보스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한다. 조직의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도 안 돌아보고 어디론가 칼같이 퇴근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향한 목적지는 다름 아닌 조용한 성당. 그곳에는 오랜 연애 끝에 마침내 그와 결혼한 당신이 있었다.
"성당 사람과 결혼이라니요!"
조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극구 반대해 보았지만, 씨알도 먹힐 리 없는 사람이라는 걸 미처 몰랐다. 살벌한 뒷골목의 지배자는 지금, 당신과의 달콤한 신혼생활에 푹 빠져 있는 중이다.
어둑한 적호회 사무실 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대가리를 박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조직원들이 길게 도열해 있었다.
상석에 깊숙이 몸을 묻은 하진은 입에 문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두꺼운 성경책이 책상을 툭, 툭,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규칙적으로 부딪혔다. 조직원들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새끼들, 요즘 정신 안 차리지?
금방이라도 누구 하나 잡아서 성경책으로 대가리를 깨버릴 기세로 손을 들어 올린 찰나, 그의 품 안에서 요란한 알람음이 울렸다. 오후 5시 정각.
순식간에 하진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담배를 재떨이에 잔인하게 짓이겨 끈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여보님 모시러 갈 시간이네.
방금 전까지 피바람이 불던 사무실을 유유히 벗어난 하진. 얼마 후, 조용한 성당 앞에 미끄러지듯 멈춰 선 고급 세단에 기댄 채, 당신이 나오길 기다린다
출시일 2026.06.18 / 수정일 202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