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like Pluto- Everything Black
간만에 재미 좀 볼까 싶어 어플을 켰다.
익숙한 화면에는 자기 몸값이라도 자랑하듯 화려한 사진과 과장된 소개글이 끝도 없이 올라와 있었다. 하나같이 자신을 포장하느라 바쁜 허울뿐이었다.
겉치레엔 영 흥미가 없었기에 한참을 넘기던 중, 유독 밋밋한 프로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 비공개. 직업 비공개. 소개글 비공개. 그저 30대 중반. Bottom. 끝.
”…뭐야, 이 재미없는 프로필은.“
그런데 이상하게 시선이 떨어지질 않더라? 솔직히 궁금했다. 관심을 끌려고 애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묘하게 끌렸다.
씨발,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호기심 반, 마침 심심했는데 잘됐다 싶은 장난 반. 어차피 다들 하는 짓은 똑같은데, 가끔은 이벤트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그 심심하기 짝이 없는 프로필로 먼저 연락을 넣었다.
“오늘 시간 됩니까?”
곧 읽음 표시가 떴고, 답장은 놀랄 만큼 빨랐다.
됩니다.
짧고 군더더기 없는 대화. 정확히는 대화랄 것도 아닌 통보에 가까웠지만, 약속은 순식간에 잡혔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상대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무심코 시선이 옆 테이블로 향했다.
“…와.”
올블랙 정장 한 벌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 날카로운 눈매와 달리 지나치게 젠틀한 분위기에, 모델이라 해도 믿을 만한 빈틈없는 슈트핏. 가만히 커피를 마시는 모습인데도 무슨 화보라도 찍는 듯한 모습까지.
누가 봐도 알파메일. 누가 봐도 씹탑.
나도 작은 편이 아닌데, 저 사람 앞에 서면 한 수 접고 들어갈 것 같은 아우라였다. 물론 내 상대일 리는 당연히 없었다. 남자 좋아할 것 같은 면상도 아니고.
그냥 눈 호강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힐끔거리다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슬슬 짜증이 올라와 휴대폰을 꺼냈다.
어디십니까?
곧바로 답장이 왔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카페인데 무슨 구라를-
거기까지 입력하던 손이 멈췄다. 잠깐만, 창가라고? 쎄한 느낌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 남자가 정확히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씨발.’
남자가 옅게 웃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곧 내 앞에 멈춰 선 그는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연락 주신 분 맞으시죠?”
나는 대답도 못 한 채 멍하니 그 얼굴만 바라봤다.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서. 아니, 이건 매칭이 안 되는데.
“왜 그렇게 놀라요.”
내 표정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듯, 남자는 느긋하게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풀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그쪽이 당하는 줄 알겠습니다.”
…와, 미친. 이 사람… 진짜 바텀이였네.
“알 거 다 아는 사람끼리.”
이윽고 이어진 마지막 한마디와.
“괜히 시간 끌지 말고.”
입가에 번지는 그 느긋한 미소가 미친 듯이 꼴렸다.
“심플하게 가죠.”
누가 봐도 경험 많은 내 과였으니까.
프로필을 꾸미는 건 오래전에 그만뒀다. 사진도. 직업도. 재력도. 그런 걸 적어 둘수록 사람들은 나보다 배경부터 봤고, 침대에 오르기도 전에 쓸데없는 기대를 품었다. 귀찮았다. 지극히 원초적인 목적을 가진 만남에서 그런 걸 따지고 기대하는 게.
그냥 할 거 하고 헤어지면 그만인데. 그래서 전부 지웠다. 남겨 둔 건 필수 항목인 나이와 포지션. 그 두 줄이면 충분했다. 걸러질 사람은 알아서 걸러졌고, 남을 사람만 남았다. 그게 훨씬 편했다.
마침 퇴근하려던 참에 알림음이 울렸다. 초면에 인삿말도 없이 다짜고짜 시간 되냐고 묻는 사람. 단번에 어떤 사람인지 대강 그려졌다. 답장은 웃으며 보냈다. 시답잖은 스몰토크를 이어 가는 사람보다는 이런 쪽이 오히려 내 취향이었으니까.
됩니다.
그걸로 약속은 끝이었다.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 창가 자리에 앉았다. 퇴근하고 바로 온 터라 옷을 갈아입지 못한 건 조금 걸렸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어차피 오래 입고 있을 게 아니었으니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던 중, 카페 문이 열렸다. 보자마자 알아챘다. 사진과 똑같았으니까. 그런데 내 쪽으로 오지 않는다. 대신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아서 이쪽을 힐끗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다들 그렇다. 키 때문일 수도 있고. 체격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평소 입는 옷 때문일 수도. 오늘은 정장 차림이었으니 더 그랬을 테고.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대놓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끝까지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약속을 취소하고 그대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는 익숙했다. 굳이 설명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프로필에 이미 적어 뒀는데도 믿지 않는 건 그 사람 몫이었으니까. 잠시 후 휴대폰이 진동했다. 어디 있냐는 문자. 속으로 웃음을 삼킨 채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몇 초 뒤. 고개를 드니 예상대로였다. 휴대폰을 든 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웃음이 새어 나오고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남자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는게 보였다.
아마 속으로 욕도 했겠지. 아니, 아직도 하고 있으려나.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더 당황하게 만들 취미는 없었으니까. 천천히 걸어가 맞은편 의자를 빼 앉으며 차분하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치 어딘가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제법 재미있었다.
연락 주신 분 맞으시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낮지만 내 앞에 앉은 사람에게는 분명히 닿을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요. 누가 보면 그쪽이 당하는 줄 알겠습니다.
잠깐의 정적. 그 반응이 싫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처음의 오해가 풀리고 나면 결국 웃었으니까.
알 거 다 아는 사람끼리. 괜히 시간 끌지 말고.
마지막까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의 눈을 바라봤다.
심플하게 가죠.
출시일 2026.07.27 / 수정일 202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