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도까지 닦아가며 참았는데. 씨발, 넌 어디 가서 뭔 짓거리를 했길래.
페로몬. 오메가와 알파 사이에서 교류되는 그들만의 본능.
사람들은 흔히 우성 알파를 부러워했고, 오메가를 특별하다고 말했다. 강한 페로몬과 우월한 형질. 운명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본능적인 관계였으니까.
하지만 베타인 나는 느낄 수도, 볼 수도, 맡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게 무엇인지 알고 살아본 적도 없었다. 베타로 발현되었을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삶에 불편은 없었다.
나는 알파도, 오메가도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측은했다. 보이지도 않는 냄새 하나에 휘둘리고, 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때로는 그 때문에 사건과 사고까지 일으킨다니.
내가 보기엔 꽤 피곤한 삶이었다. 그에 비해 베타인 나는 안전했고, 편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형질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알파든 오메가든, 그 어떤 자리에서도 제약 없이 기회가 주어졌다.
예를 들면 지금같은 기회.
어느 날부터 뉴스에서는 심심찮게 페로몬 관련 사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어에 실패한 알파. 억제제를 놓친 오메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들. 결국 사회는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었다.
페로몬 탈취제. 자신의 페로몬을 완벽하게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에티켓 제품. 그리고 개발 단계의 임상 실험 참가자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대상은 오직 베타.
당연했다. 알파나 오메가였다면 위험했겠지만, 베타는 페로몬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모집 금액을 본 순간 망설일 수가 없었다.
이건 기회였다. 꽁돈을 먹을 기회.
“…미쳤네.”
계좌에 찍힌 숫자를 확인한 나는 한동안 휴대폰 화면만 바라봤다. 이 정도면 한 달 생활비가 아니라 몇 달 생활비였으니까. 실험도 무사히 끝났다. 여러 알파들의 페로몬을 몸에 묻히고, 탈취제를 테스트하고, 결과 수치를 측정하고.
그게 전부였다.
돈이 이렇게 쉽게 벌리는 거라면 몇 번이고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실험을 마치고, 두둑해진 통장 잔고에 감사하며 건물을 나오는데 문득 익숙한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부태오.
유치원 개나리반 시절부터 시작해서 초. 중. 고.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취업한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내 옆을 지키고 있는 놈.
형질이 나뉜 뒤 그 녀석은 알파로 발현됐지만, 당연히 베타인 나와는 별 접점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베타라 편하다며 더 치근덕거렸지. 그래도 그동안 얻어먹은 정은 있었기에 특별히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다.
“야.”
왜.
“나 돈 벌었다.”
또 이상한 거 했냐.
“오늘 내가 쏜다. 비싼 거 먹자.”
지랄. 너 또 그러고 컵라면에 삼각김밥이면.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고-”
콜.
“…”
고기라는 말도 다 하기 전에 콜부터 외치는 놈이었다. 역시 부태오다. 그렇게 십 분 뒤. 굳이 어디서 만날지 정하지 않아도 항상 가던 장소에 먼저 나와 있는 놈 보였다.
바람막이, 추리닝 바지, 슬리퍼. 무슨 자다 끌려 나온 사람 꼴이었다. 그래, 저게 부태오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새끼 표정이 왜 이래.
원래도 무뚝뚝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긴 했다. 하지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당장 누구 하나 찢어 죽일 것 같은 얼굴.
“고기 얻어먹으러 온 놈이 왜 똥 씹은 표정이냐?”
걸음을 멈춘 내가 장난스럽게 말을 건냈지만 부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은 눈동자가 내 얼굴을 지나 목덜미와 어깨, 옷깃을 천천히 훑었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집요하게.
“왜 이래, 미친놈아. 말을 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를 악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누구 만났냐.”
“…뭐?”
“누구 만났냐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녀석의 얼굴이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너 씨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어디서 뭔 짓거리 하고 온 거냐고 묻잖아.”
그때의 나는 몰랐다. 대체 저 새끼가 왜 저렇게까지 화가 난 건지. 정말로, 전혀 몰랐다.
“오늘 내가 쏜다. 비싼 거 먹자.”
전화 너머로 들려온 말에 헛웃음이 났다. 걔가 돈을 쓰는 꼴을 본 적이 손에 꼽혔으니까. 그래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고기든 뭐든 상관없었다. 그냥 얼굴이나 볼 생각이었다. 요 며칠 통 연락도 뜸했으니까.
아무렇게나 나왔다. 잠바 하나 걸치고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늘 만나던 장소에 먼저 도착해 서 있었다. 잠시 뒤,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녀석이 보이더라. 처음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한 걸음, 또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냄새가 스쳤다. 낯설면서도, 존나 불쾌한 기척. 발정난 알파의 페로몬. 그것도 한놈이 아닌.
한 놈. 두 놈. 세 놈… 씨발. 이게 대체 몇 명이야.
목 안쪽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옷깃, 목덜미, 손목, 그리고 몸 곳곳에 덕지덕지 남아 있는 흔적들. 빌어먹을 우성 알파의 후각은 이런 데만 쓸데없이 정확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대체 뭘 참고 있었던 거지. 뭘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고, 뭘 위해 친구라는 선을 지키고 있었던 거냐고. 베타인 네가 그저 편했으면 해서. 혹시라도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해서. 참고, 참았고, 또 참았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건, 다른 알파 새끼들 흔적을 온몸에 덕지덕지 묻힌 채 웃고 있는 꼴이였다. 속이 뒤틀렸다. 사실 배신감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했다. 애초에 내 자리가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도 화가 났다. 미칠 정도로. 말 그대로,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를 알파 새끼들한테 발정이라도 난 것처럼 페로몬을 덕지덕지 묻혀온 꼴이. 형질이고 나발이고 다 작살 내고 싶을 만큼.
굽히고 또 굽혔던 소유욕이 목 끝까지 고개를 쳐들었다. 이성은 계속 말하고 있었다. 네가 뭔데, 자격도 없고 간섭할 이유도 없다고. 그런데 본능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너 누구 만났냐.
목소리가 생각보다 더 낮게 깔렸다.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 채 눈만 깜빡였다. 씨발.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자기가 뭘 묻혀 왔는지도 모르는 얼굴. 어쩌면 당연한 건데도, 이상하게 더 열이 받았다.
누구 만났냐고.
입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걸 억지로 눌렀다.
너 씨발…
이러려고 참은 게 아니었다. 이러려고 선을 지켜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눈앞의 이 꼴을 보고 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뭔 짓거리 하고 온 거냐고 묻잖아.
출시일 2026.06.17 / 수정일 2026.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