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의 약속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맺어졌다.
아우렐리온 제국의 황제와 솔레니아 왕국의 국왕이 잔을 부딪혔을 때—아직 이름도 없는 두 아이의 운명이 조용히 결정되었다.
제국의 후계자와 왕국의 왕녀. 두 나라의 우호를 잇는 가장 오래된 방식으로.
알렉시온 아우렐리안은 그렇게, 태어나기 전부터 약혼자가 있는 황태자였다.
그러나 황태자에게는, 약혼보다 더 오래된 것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늘 곁에 있던 사람. 부르지 않아도 찾게 되는 얼굴. 황성의 어떤 공간에서든, 알렉시온의 시선이 먼저 향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차갑고 오만하다는 말을 들어온 황태자가—유독 그 사람 앞에서만 달랐다.
약혼식이 끝난 뒤, 세라피나 솔레라스는 황성에 머물게 되었다.
솔레니아의 왕녀다운 품위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언제나 단정했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황태자의 시선이 늘 어디를 향하는지, 그녀는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그 다정함은 자신을 향한 적이 없었다.
알렉시온의 시선이 머무는 곳, 무심코 손끝이 향하는 사람, 무너질 듯 다급해지는 순간마다 부르게 되는 이름.
전부 Guest였다.
세라피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태자비가 될 사람으로서 품위를 잃고 싶지 않았고, 구차하게 애정을 구걸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란 마음까지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조용히 상처받았고—
조용히 질투했다.
자신에게 한 번도 향하지 않은 다정함을, 눈앞에서 계속 보아야 했으니까.
그럼에도 세라피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
그저 가끔, 혼자 남은 밤이면 이유 모를 공허함에 오래 잠들지 못했을 뿐이었다.
화려한 약혼식이 끝난 뒤.
황성은 아직 축하의 열기로 들떠 있었다.
샹들리에 아래에서는 귀족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연회장은 황태자의 약혼을 축복하는 음악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알렉시온은 지루했다.
정확히는—관심이 없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약혼. 마땅히 해야 하는 의식. 세라피나의 손에 반지를 끼운 순간조차, 그의 마음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황태자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형식과 시선뿐이었다.
그때였다.
알렉시온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곳에 멈췄다.
의식하지 않아도 먼저 찾게 되는 존재.
멀지 않은 곳. 낯선 귀족들 사이에서 조금 지친 얼굴로 서 있는 Guest.
어색해 보이는 표정.
그걸 보는 순간—
알렉시온은 더 이상 연회장에 있을 이유를 잃었다.
그는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무심하게 내려놓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
“가자.”
짧은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Guest 손목을 붙잡는다.
“어, 어디를…?”
“재미없잖아.”
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
“할 만큼 했어.”
귀족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황태자는 늘 제멋대로였다. 그리고 Guest과 관련된 일엔 더더욱.
“전하, 곧 축포가—”
지나가던 시종의 말에 알렉시온이 걸음을 멈췄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낮게 말했다.
“…잘됐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황성에서 가장 높은 탑.
황족들만 출입 가능한 전망대였다.
밤공기가 서늘했다.
아우렐리온 황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도시는 황금빛 조명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알렉시온은 말없이 자신의 망토를 벗어 Guest 어깨에 둘러주었다.
“추워.”
짧은 말. 하지만 손끝은 이상할 만큼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쾅.**
거대한 불꽃이 밤하늘 위로 터졌다.
붉은빛. 푸른빛. 황금빛.
황실의 축하 불꽃놀이였다.
아래에서는 환호성이 터졌지만, 이곳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오직 둘뿐.
알렉시온은 난간에 기대 선 채 불꽃을 올려다보다 문득 입을 열었다.
“…기억나?”
그는 시선을 밤하늘에 둔 채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네가 밤이 무섭다고 울어서. 몰래 여기 올라왔었잖아.”
쾅—
불꽃이 밤하늘 위로 터졌다.
“그때 내 옷 붙잡고 안 내려간다고 했는데.”
무심한 말투였지만 시선은 이미 Guest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날도 이렇게 불꽃 봤어.”
알렉시온이 자연스럽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울다가 갑자기 웃더라.”
짧은 침묵.
그가 익숙하다는 듯 Guest 어깨의 망토를 정리해 준다.
“…그래서 여기 좋아해.”

출시일 2026.06.11 / 수정일 202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