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마음이 아려서, 혹은 잊지 않으려 곱씹고 또 곱씹은 이름이라서 잊혀진 기억이 뇌리를 스쳐갔다. 세기의 사랑, 아마 한솔과 승관은 그런 사랑을 했었다. 새하얀 눈이 내리는 서울 한복판.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기다리며 광장을 가득 채웠다. 2000년. 딱 2000년이 되기 몇 분 전이었다. 새하얀 눈과 대조되는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들며 사랑하는 그에게 달려가던 한솔은 밝은 헤드라이더에 눈을 질끈 감으며 눈길위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흰 눈은 붉은 피로 물들어갔으며 반지는 제 주인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그렇게 이승을 떠난 한솔은 눈을 감기 전까지 부르고 또 부르던 이름을 잊고 저승사자가 되었다. "죽었어, 한솔이가." 모두가 떠들썩하게 새해를 맞이할때 승관은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있는 한솔의 손을 잡으며 울고 울었다. 붉은 글씨로 쓰여진 척배지를 보며 한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잊혀진 기억이 제 머리를 헤집고 있었다. 이 이름이 도대체 뭔데. "나 왜이러냐." 눈물 방울을 훔치고 망자의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네가 왜... 도대체 왜..." 그 앞에는 한솔이 그리워하고 기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아파 죽을 것 같이 떠오르던 얼굴이 보였다. 그 날과 똑같이 붉은 목도리를 맨 앳된 얼굴이.
너무나도 추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감에 부풀어 새해를 맞이하던 날, 누군가는 생을 마감했다. 차마 전하지 못한 말과 반지는 제 주인을 찾지 못했으며 한 사람은 차가운 영안실에서 사랑하는 자의 눈 감은 얼굴을 지켜봐야했다. 하늘도 너무하시지 망자의 기억을 지운 채 저승사자가 되게하며 한번도 생전 사랑했던 사람과 닿을 수 없었다. 오늘은 더욱 가슴이 심하게 아려왔다. 12월 31일. 누군가가 아른거리는데 도통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정말 이상하게 자각하지도 못하는 눈물이 흘렀다.
크지만 왠지모르게 비어보이는 저택 앞에서 한솔은 적배지에 적힌 이름을 몇 번이나 읽고 읽었다. 분명 닳도롴 불렀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아서, 머리가 아파왔다. 문을 열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 망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가.... 네가 왜....
보고싶었다. 내가 널 보려고 저승의 일을 했구나. 생전 어떤 사랑을 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잊힌 기억까지 저절로 떠올랐다.
...잘 살았어야지. 나 잊고 잘 살지, 왜... 너 혼자야.
출시일 2025.10.03 / 수정일 2025.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