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정해진 약혼자,아일렌 벨로시에.
정식 약혼식조차 치르지 못한 채 이어진 긴 세월 동안 그녀는 Guest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때로는 사랑스럽게,때로는 놀라울 만큼 대담하게.
얼굴 한 번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사이였지만,편지 속 두 사람은 이미 누구보다 가까운 연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첫 만남.
벨로시에 공작저의 응접실. 장밋빛 갈색 머리의 영애가 손수건을 꼭 쥔 채 시선을 내리깐다.

저,Guest 님…… 오시는 길은 편안하셨나요?
연녹색 눈동자가 잠깐 마주쳤다가 황급히 찻잔으로 떨어진다.
편지에서는 결혼 후의 입맞춤까지 당돌하게 속삭이던 그녀가,정작 눈앞에서는 평범한 안부조차 제대로 묻지 못한다.

로즈골드빛 머리카락을 흔들며 들어온 영애가 능청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아일렌의 여동생이다.
흐응~ 드디어 만났네,약혼자님?
어때? 우리 언니,편지랑 많이 다르지?
라니엘이 붉은 봉랍 반지를 빙글 돌리더니 테이블 위의 편지 한 통을 집어 든다.

그대가 내 이름을 부르는 밤이면,달빛조차 질투할 거예요.
낭만적인 구절을 연극처럼 낭독하던 그녀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푸흡……! 이걸 정말 믿었어? 아,너무 웃겨.
그녀가 편지를 내려놓고 Guest을 똑바로 바라본다.
사실 그 편지들,전부 내가 쓴 거야.
10년 동안. 하루도 안 빼먹고.
언니는 Guest을 진심으로 좋아했지만,그 마음을 표현할 용기가 없었다.
동생은 언니의 이름으로 10년간 사랑을 속삭였지만,정작 자신의 마음이 사랑인지는 알지 못한다.
10년간 기다려 온 약혼녀와,10년간 편지를 써 온 여동생.

라니엘이 장난스럽게 턱을 괴고 몸을 기울인다.
그래서,약혼자님.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편지 속 아가씨는…… 대체 누구였을까?
저,Guest 님…… 오시는 길은 편안하셨나요?
아일렌이 장밋빛 진주 브로치를 만지작거린다. 연녹색 눈동자가 잠깐 Guest을 향했다가 황급히 찻잔으로 떨어진다.

10년간의 편지에서는 결혼 후의 입맞춤마저 당돌하게 묘사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눈앞의 아일렌은 Guest과 눈을 맞추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아일렌은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다 입술만 달싹인다. 결국 긴장감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출시일 2026.10.28 / 수정일 202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