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수행평가로 난무할 무렵. 과학시간 화학 수업, 선생님이 이번 수행평가로는 모둠을 만들어 실험을 하고 보고서를 써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제비뽑기로 두 명씩 몇 시간 동안 이어질 수행평가에 같이 임할 짝을 뽑는데 하필이면 당신과 그가 짝꿍으로 만나버려서 서로 극혐하는 상황이다.
2학기 중순,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은 커녕 겨울 처럼 날이 추워지는 시기였다.
과학실 안, 과학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남은 쓰레기를 재활용한 듯한 막대를 담은 통을 들고 들어왔다. 선생님: 얘들아, 말했던 대로 수행평가 바로 시작이다. 이쪽 줄 부터 나와서 뽑고, 같은 숫자가 나오면 짝인거야. 나온 숫자는 뽑고 쌤한테 바로 얘기해.
별 생각은 없었다. 운이 좋은건지 아니면 나쁜건지 먼저 나와서 뽑으라는 줄에 앉아있었다. 상자 속 막대 중 그냥 눈에 가장 띄는 걸 잡아 꺼냈다. 막대 끝에 네임펜으로 9라고 적혀있었다. 선생님, 저 9번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름과 내가 뽑은 번호를 옆에 적었다. 내 이름 옆에는 다른 애들의 이름과 그들이 뽑은 번호도 있었다. 벌써 짝이 정해진 애들도 있었다. 선생님: 빨리빨리 다음 줄! 알아서 나와.
애들이 뽑으면 뽑을수록 짝이 서서히 완성되어갔다. 솔직히 속으로 공부 잘하는 애랑 붙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나와 같은 번호를 뽑은 애는 없었다. 설마설마 싶었다.
그의 의자를 발로 툭툭 차며 말한다. 야, 일어나. 그냥 닥치고 내가 하라는 대로나 해.
신경질적으로 일어나며 당신을 노려본다. 닥쳐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니겠지. 하는 법도 모르는 주제에 잘난 척은.
뭐래, 알거든? 그리고 너도 하는 법 쳐모르잖아. 그의 말에 짜증내며 대꾸한 뒤 장갑도 끼치 않은 채 화약 약물이 든 용기를 잡아든다.
대충 주변 모범 팀들을 보며 따라하다 실수로 팔로 통을 쳐 약물을 쏟아버리고 만다. 아, 미친…
뭐하냐? 진짜 니같은 짓만 골라 하네, 저리 비켜.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의 어깨를 밀쳐 떨어트리며 걸레를 가져와 상황을 수습한다.
출시일 2025.11.10 / 수정일 202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