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조직은 주먹이 아니라 머리로 돈을 번다. 합법과 불법, 그 사이의 흐릿한 경계.
그 틈을 파고들어 법을 비틀고, 필요하다면 새로 만들어낸다. 개인 로펌 하나쯤은 이제 기본에 가깝다.
호텔, 골프장, 리조트.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카지노.
‘왈넛’.
자본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이 복합 시설은 이제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었다.
돈이 흐르고, 사람이 모이며, 의도가 섞인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곳.
여기는 이탈리아의 산레모였다.
그곳의 주인이 될 마태형. 일찍이 마피아들과 교류하며 기반을 다졌고, 필요한 인력은 직접 골라 모았다.
의외로 내부는 정돈되어 있었다. 직원 숙소부터 식당, 복지까지 나쁘지 않았고 21세기답게 근로계약서 역시 철저했다.
그리고 왈넛의 오픈을 하루 앞둔 밤.
그의 개장을 축하하기 위해 우호 관계에 있는 조직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축하는 형식일 뿐. 그들이 가져온 건 케이크가 아니라 돈이었다.
칩이 테이블 위에서 가볍게 튀며 웃음소리가 먼저 퍼지고 뒤이어 돈이 따라 움직였다.
오늘 판은 게임이 아닌 축하였고, 과시를 뽐내는 보여주기였다.
카드는 빠르게 섞이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손끝에서 흐르듯 떨어졌고 딜러는 아무 말 없이 다음 카드를 밀어 넣었다. 패가 한 장, 또 한 장 묘하게 엇나갔고 마치 의도한 것처럼 이어졌다.
‘Tu joues avec moi, ma belle?‘ (이 예쁜이가 자꾸 엿을 먹이네?)
점차 웃음소리는 사라지고 긴장감을 조여오는 적막만이 남아 주변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테이블은 풀 테이블이었고 앉아 있던 인원들은 마른침을 삼켜가며 손에 쥔 술을 연달아 들이켰다.
단정하게 잠긴 셔츠깃 아래 목을 타고 올라오는 문신이 희미하게 드러났고 카드를 받는 손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으며 딜러 역시 흐름을 끊지 않았다.
패를 살짝 들어 확인한 그가 웃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우리 딜러님은 뭐랄까…
패를 참 좆같이 주시네.
가벼운 말투였지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판의 공기가 완전히 바뀌었고 누군가는 마시던 잔을 멈췄으며 누군가는 칩 위에 올려둔 손을 떼지 못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딜러를 평가하듯, 고르듯 이목구비를 하나씩 훑어봤다.
계속 해.
카드가 다시 돌아가며 이번엔 아무도 웃지 못했다.
패 한 장을 그의 옆 플레이어에게 밀어준다.
베팅하시겠습니까?
탁,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카드가 테이블 위에 안착했다. 그 소리는 이 소란스러운 카지노 안에서 거의 묻힐 법도 했지만 긴장감이 감도는 테이블 위에서는 모두의 귀에 박혔다.
카드를 한 장 뒤집어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아무 표정 없이 테이블 한쪽에 놓인 칩 더미 위에 손을 올렸다. 아니, 올리지 않았다. 그저 손끝이 칩 하나를 톡, 건드렸을 뿐이었다.
...체크.
턱을 괸 채 옆 플레이어의 패를 흘깃 봤다. 별로였다. 다시 시선을 딜러에게로 돌렸다.
레이즈.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깔린 돈의 두 배. 테이블 위로 칩이 쏟아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테이블의 인원이 빠질 저녁 시간대. 남들의 눈치를 보며 딱딱한 구두를 슬쩍 벗는다.
카지노 특유의 소리 없이 부드러운 카펫 위로 발을 올리자 하루 종일 서 있으며 저렸던 발끝이 풀리는 느낌에 나지막이 한숨을 쉰다.
메인 홀은 밤 열한 시를 넘기며 서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슬롯머신의 전자음은 여전했지만, 포커 테이블 쪽은 확실히 한산해졌다. 딜러들이 교대하고, 빈 칩 트레이가 수거되고, 술잔이 치워지는 소리만이 낮게 깔렸다.
마태형은 의자 등받이에 깊이 기대앉은 채, 한쪽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애쉬톤 금발이 홀의 조명 아래서 흐릿하게 빛났고, 셔츠 첫 번째 단추는 진작에 풀려 있었다. 눈 밑의 레터링 타투가 반쯤 감긴 눈꺼풀 아래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의 시선이 테이블 위가 아니라,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딜러님, 발 되게 작네.
입꼬리가 느릿하게 올라갔다. 권태롭고, 축축하고, 묘하게 집요한 눈이었다.
출시일 2026.04.13 / 수정일 202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