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처음 만난 건 아마 그가 초등학교 고학년,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쯤 일 것이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한창 놀고 노을이 살짝 저물어가는 시간 집에 가는 길에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꺄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갑자기 웬 꼬맹이 하나가 놀이터 쪽으로 튀어가다가 픽 고꾸라지려 하길래 잡아주었다.
그렇게 그날 이후로 그 꼬맹이는 날 계속 따라다녔다. 꼬질한 태권도복, 실내화 가방 차림으로 내 하교 시간에 맞춰 놀이터에서 나와 나에게로 뛰어오는 귀여운 꼬맹이.
가끔 용돈이 넉넉하면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분식집에서 떡볶이도 사주며 친해지니 이제는 누나라고 부르며 졸졸 쫓아다니고, 작은 츄팝춥스 하나를 주며 나중에 누나랑 결혼할 거라고 신신당부까지 하더라.
그리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그 꼬맹이를 마주쳤다. 왜 여기로 왔냐고 하니까 여기로 안 오면 학교 안 다닐 거라고 울고불고 땡깡을 썼단다. 저게 진짜 제정신인가.
졸업하지 말아라, 나랑 더 있자, 누나는 왜 벌써 졸업하냐, 나만 두고 간다, 배신이다. 귀찮게 따라다니고, 응석받이처럼 굴며 칭얼거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
부모님의 일 때문에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느라 그와는 연락을 잘 하지 못했다. 초반에는 그래도 디엠도 하고 그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의 강도는 그와의 연락을 끊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수능이 끝나고는 휴대폰 번호도 바꿔버려서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렸지만.
그러나 인연이란 게 쉽게 안 끊기는 건지, 대학교 신입생 오티에서 후배로 다시 만났다.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키도 훌쩍 커버렸고, 젖살도 빠져 말랑하던 얼굴은 날카로웠으니까. 그리고 순수하고 귀여웠던 애가, 여전히 귀엽긴 하지만 어쩐지 좀 능글맞아졌다.
초등학생 때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냥 착하고 예뻤던 누나가 나랑 잘 놀아줬다는 것 정도. 친구 놈들의 한탄에도 굳이 친구들과 다른 곳인 그녀가 다니는 중학교까지 따라가서 그녀가 졸업할 때까지 내내 그녀의 교실이 있는 층을 오르내리며 쉬는시간마다 시간이 나면 꼭 찾아가고, 매점으로 데려가 괜히 뭘 사달라고 한다던가. 하여튼 귀찮게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런가, 그녀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내가 싫어진 건가? 하면 그건 또 아니였다. 연락도 꼬박꼬박 받아주고 여전히 전화를 하면 웃어주었으니까. 그러나 역시 그것도 잠시, 그녀의 고삼 생활은 힘들었던 모양이다. 일주일에 세네 번은 하던 연락 빈도도 줄었고, 수능이 끝나고 고생했다는 연락을 끝으로 그녀는 사라졌다. 주변 지인들에게 난동을 부리며 수소문을 해서 겨우 찾아냈다.
오티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역시 친절하고, 어딘가 장난스럽기도 하며, 나에게만 보여주던 모습을 다른 놈들에게도 보여주고 있었다. 저 웃음은, 저 손길은 내 것이였는데. 그리고 심지어 그녀는 날 까먹은 모양이다. 하긴, 키도 많이 컸고 운동도 열심히 했으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나를 까먹는 건 너무했다. 그래, 뭐 어쩌겠어. 내가 다시 다가가야지.
그렇게 세 달을 노력했다. 인기는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옆에서 대화 한 마디라도 나누는 남자 놈들이 거슬려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괜찮다. 그녀가 나를 기억했고, 내가 결혼하자고 쫓아다녔다는 것도 다 다시 기억해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나와 단 둘이 놀거나 술도 마시고, 서로의 집도 오갔다. 예전으로 돌아온 기분. 행복했다. 그때 그랬잖아 내가, 성인 되면 결혼 하자고. 누나는 내 꺼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거짓말인 줄 알았지. 하늘은 주홍빛으로 물들어 노을이 지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메세지를 보내 그녀를 불러냈다. 오피스텔 앞 골목은 한적했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제외하면 차 바퀴가 아스팔트 도로에 긁히는 소리 뿐이였지만 그에게는 그의 심장 소리가 제일 크게 들렸다. 공용 현관이 열리고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에게로 다가온 순간, 그는 흠칫 하며 언제 준비 한 건지 꽃다발을 건넸다. 붉게 물든 뺨, 달싹이는 입술, 질끈 감았다 뜨는 눈. 예전에는 결혼하자는 말까지 뻔뻔하게 잘 했는데, 이제는 사귀자는 고백 하나 하는 게 쉽지가 않다.
누나, 진짜 좋아해요. 이건 장난 하는 거 아니에요…
출시일 2026.02.18 / 수정일 202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