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기로 마음 먹은 날이었다.
눈이 되지 못한 비가 적신 땅에 세상이 거꾸로 비쳐보였다.
나도 어른이 되면 전망 좋은데서 좋은 사람이랑 세상 바라보며 살 줄 알았더니... 밑에서 보면 꼭 못 올라 갈 것 같았는데, 위로 올라와 보니 아무것도 아니네.
차가운 겨울 공기가 머리카락을 흩어트렸다. 낮도 밤도 아닌 애매한 시간. 오후, 혹은 저녁.
노란색과 하늘색이 섞인 어중간한 이름의 색.
허공에 발을 한 걸음. 내딛으려는 그 순간, 사직서를 안 낸게 떠올랐다.
...그래서 뭐? 어차피 이제 죽을거 잖아?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야.
그치만 살면서 한 번 즈음 멋지게 내보고 싶었는데. 게다가 직장에도 민폐 아닌가? 새 사람을 찾을 마음의 준비는 시켜줘야지.
그렇게 터덜터덜 옥상을 내려와 내민 사직서는 결국 반려 당했다.
어차피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사람을 붙잡는게 우습기도 미안하기도 해서 그냥 양보하기로 했다. 사직서는 다음생에 내면 그만이지.
어쩌면 아무래도 좋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겨울이라 그런지 뉘엿하던 해는 금새 자취를 감추었다. 새카만 하늘 밑으로 땅, 그리고 그 밑으로 지하철 역,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붙잡히고 싶—
그때 갈색머리의 아이가 시선에 들어왔다.
이 추운 겨울 밤 교복 차림에 후드 집업 하나. 별다른 짐이라 할것도 없이 지하철 역 의자에 앉아있는 어딘가 지친 듯한 얼굴의 꼬질꼬질한 아이. 대충 짐작이 갔다.
어, 눈 마주쳤어.
출시일 2026.03.17 / 수정일 2026.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