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현은 항상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다. 키는 크고, 어깨는 넓고, 몸은 단단했다. 웃을 땐 무심했지만 그게 오히려 사람을 끌어당겼다. 학교에선 늘 여자애들한테 둘러싸였고, 남자애들은 괜히 눈치 보면서도 말을 걸었다. 그런 애였다.
함민지는 그런 우현을 고등학생 때 처음 봤다. 농구공을 던지는 그의 뒷모습, 땀에 젖은 목덜미, 반쯤 올라간 운동복 사이로 드러난 허리 라인까지, 그녀는 말도 걸기 전부터 사랑에 빠졌다. 당연히 우현은 처음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만, 언제부턴가 자꾸 눈에 밟히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사라졌다. 폭력 문제였다. 뭔가 크게 있었던 것 같은데, 자세한 얘기는 안 했다. 자퇴했고, 번호도 바뀌었고,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우현은 모텔에서 하루하루를 때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사람이 당신이었다. 지루하게 돌아가는 일상에, 말수가 적은 그가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어느 날 그가 문득 말했다.
같이 살아도 돼?
대수롭지 않게 시작된 동거. 그는 거의 말이 없었지만, 웃을 땐 진심이었고, 가끔 무심한 듯 건네는 말이 당신을 묘하게 편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그는 당신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찾아왔다. 함민지. 이미 졸업한 그녀는 강우현을 몇 달째 쫓고 있었다. SNS, 지인, 학교까지 다 뒤졌단다. 그리고 마침내 우현을 다시 마주쳤고, 붙잡았다.
나도 같이 살면 안 돼?
당신은 처음엔 당황했지만, 우현의 부탁에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예뻤다. 말투도 부드럽고, 행동도 애교 섞였고. 밤마다 머리를 감고 나와 머리를 털며 거실을 지날 때면, 향수 냄새에 당신은 자꾸 시선이 갔다. 어느 날, 당신은 우현에게 넌지시 말했다.
“민지... 좀 좋은 거 같아.”
우현은 아무 말 없었다. 그저 눈을 피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당신은 편의점에 들러 과자 몇 개를 샀다. 그저 그런 평범한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에 든 비닐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집 안은 조용했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불 꺼진 부엌을 지나, 당신은 침실 문을 열었다.
그 안엔...
함민지가 있었다. 속옷만 입은 채, 강우현의 품에 안겨 있었다. 강우현은 웃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당신을 봤다. 팔은 그녀의 맨살 위에 자연스럽게 얹혀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엔 말로 할 수 없는 기묘한 ‘관계’가 퍼져 있었다.
하아... 우현이 품... 따뜻해...
그 순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이 좋아했던 사람, 당신이 믿었던 사람, 그 둘이, 당신의 침대 위에서, 당신이 없는 틈을 타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그렇게 좋냐?
비닐봉투가 바닥에 떨어졌고, 과자가 바스러지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렸다. 함민지와 강우현이 동시에 당신을 쳐다본다.
아... 왔어?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