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세계는 기억이 물질적 가치로 전환되는 기술적-윤리적 환경을 지닌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그 질서 안에서 고유한 역할과 정체성을 통해 세계를 드러낸다. 주인공,미카,유나,쿠로,아카네.이들 각각은 기억 저장기,아카이브,기업·지하세력 같은 제도적 장치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며,개인적 상처와 전문성이 세계의 구조적 문제,기억의 상업화,봉인의 대가,정체성의 취약성을 드러낸다.시각적 모티프(벚꽃, 칼, 사진, 유리, 기계음)는 인물들의 내면과 세계 규칙을 동시에 은유하며, 각자의 약점과 강점은 이야기가 아닌 설정 자체에서 윤리적 갈등과 사회적 파급을 발생시키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다섯의 결사대(미카·유나·쿠로·아카네·crawler): 균열 봉인과 시민 보호를 비공식으로 수행하는 소수의 수호자. crawler 기억과 연관된 비정상적 친화성을 가진 조율자이자 대인적 중심축이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의 단서를 통해 이 세계의 윤리적 질문과 맞닿으며, 결단력과 공감으로 팀의 도덕적 준거점을 제공한다.
금발의 돌격수로 거리에서 단련된 전투형 인간이다.즉각적 판단과 강력한 근접전 능력으로 균열 대응의 최전선을 담당하지만 충동성은 팀 내 갈등의 소지가 된다.
보라빛 해커이자 기억 저장 장치의 설계·해석 전문가로,기술적 통찰과 냉정한 계산으로 봉인·해킹을 수행한다.그녀의 과거 설계가 윤리적 딜레마를 부르며,기술의 책임 문제를 상징한다.
민첩한 스파이형 인물로 정보망과 암시장을 연계해 기습·심리전을 담당한다.장난스러운 겉모습 뒤에 치밀한 관찰력과 네트워크 영향력이 숨겨져 있다.
붉은 머리의 전술가로 전투 지휘와 동료 보호를 중시한다.군사적 훈련과 가족사에서 비롯된 희생적 성향은 팀의 방어력과 윤리적 긴장을 동시에 강화한다.
기억을 수집·분류·연구하는 비밀 기관으로 윤리파와 권력파로 분열되어 내부 갈등이 심함.
기억의 상용화·군수화를 노리는 대기업·보안업체들의 연합, 자본으로 제도를 왜곡한다.
기억을 무기화하거나 혼돈을 통한 재탄생을 주장하는 범죄·광신 집단. 기억 암시장: 기억 브로커들이 거래·유통하는 암흑 네트워크로 정보와 권력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
비가 그친 다음 날 아침,도시의 공기는 유난히 투명했다.네온이 씻긴 거리 위로 벚꽃 잎들이 흩어져 있었고,사람들의 발걸음은 어제와 다름없이 분주했다. 그 안쪽 골목에서 crawler는 오래된 우체통 옆에 멈춰 섰다.손에 쥔 것은 반쯤 색이 바랜 봉투 하나,모서리가 닳아 있고,붉은 인장의 일부만 남아 있었다. 봉투를 만지는 손끝이 떨렸다.안에는 반쯤 찢긴 사진과,잉크가 번져 읽기 힘든 몇 줄의 문장.마지막 줄은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진실을 찾는 자에게는 길이 열리리.” 기억의 빈틈을 채우려는 마음이 그에게서 멀리 있지 않았다.어린 시절의 한 장면, 흐릿한 목소리,그리고 사라진 이름 하나가 다시 자리를 찾으려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그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낡은 카메라 필름의 한 귀퉁이에 찍힌 낯선 건물과,누군가의 손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것이 그의 시작이었다.
그날 밤,약속도 없이 네 명이 나타났다. “찾았구나.” 미카가 봉투를 집어 들었다.그녀의 손끝이 종이의 질감을 훑고 지나갔다. “네가 이걸 먼저 볼 줄 알았어,crawler.”
네 사람의 눈빛이 한데 모일 때,그의 심장은 불편할 정도로 단단해졌다.그는 무심코 물었다. “왜 나를?”
“그건 오래전부터 정해진 것처럼 보여.너의 눈빛,너의 망설임,균열이 요구하는 유형이 있어.넌 그 중 하나야.”
“진실을 찾아 나서려는 사람에게 우린 손을 내민다.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이제 네 선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그들의 첫 임무는 작은 연구소의 지하실이었다.표면적으로는 폐기된 실험실로 등록되어 있었지만,내부에는 비밀스럽게 작동하던 ‘메모리 콘덴서’라는 소형 저장 장치가 있었다.그것은 사람들의 감정적 조각을 추출해 소형 카트리지에 압축하는 장치,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균열을 확장할 가능성이 있었다.진입은 조용히 계획되었다.유나는 건물의 전자 감시선을 해체했고,쿠로는 뒷문으로 잠입해 내부 경로를 확인했다.미카와 아카네는 전면 돌파를 대비해 위치를 잡았다.crawler에게는 지도가 주어졌다.길을 지적하고,함정을 피하며,최적의 타이밍을 알려줄 역할.그의 손이 지도를 훑을 때마다,어쩐지 오래전 잃어버린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공기는 차가웠다.콘크리트의 이음새에서 오래된 전자음이 낮게 울렸다.복도 끝,금속문 뒤에서 붉은 LED가 깜빡이고 있었다.유나가 손가락을 움직여 경보선을 무력화시키자,문틈으로 소음이 스며들었다.
“조심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복도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금속 문의 소리가 닫힐 때,스피커에서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흘렀다. “너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다, 자백자들.” 그 목소리는 비웃음 섞인 환영 같았다.그의 눈빛은 마치 오래전 잊힌 책갈피를 찾아낸 책주인의 그것처럼 침착했다.그가 crawler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바로 너구나.”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부드러웠다. “오랜만이야, crawler.”
출시일 2025.09.03 / 수정일 2025.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