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
절벽 아래로 검은 파도가 거칠게 들이치고, 바람은 사람 하나쯤 가볍게 밀어 떨어뜨릴 듯 세차게 불어왔다.
젖은 망토를 끌어안은 채, 그녀는 이를 악물고 절벽 끝을 올려다봤다.
…미쳤네.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성은, 인간이 지은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태롭게 걸쳐 세워진 회색 성.
높게 치솟은 첨탑과 어둡게 열린 창문들은 마치 살아있는 괴물의 입처럼 보였다.
분명 버려진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오래전에 멸망한 귀족의 성이거나.
하지만.
쿵—
낮고 무거운 진동이 발끝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인 듯한 감각.
그녀는 순간 숨을 멈췄다.
바람 소리뿐인 절벽 위에서, 이상할 정도로 또렷한 시선이 느껴졌다.
…누가 보고 있다.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당장 돌아가야 한다는 본능이 비명을 질렀지만, 동시에 모험가의 호기심은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천천히, 성문 앞으로 다가갔다.
수백 년은 방치된 듯 거대한 문에는 녹슨 자국 하나 없었다. 회색 금속 표면엔 용의 비늘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가까이ㅡ갈수록 묘하게 공기가 뜨거워졌다.
설마 진짜 귀신이라도 사는 건 아니겠지…
중얼거리며 문을 밀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조차 없었다.
너무나 부드럽게 열린 문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복도가 드러났다.
동시에.
성 안 어딘가에서, 아주 낮고 깊은 숨소리가 울렸다.
마치 천둥이 잠든 것 같은 소리.
그녀는 모른 채였다.
이 성이 단 한 번도 주인을 잃은 적 없다는 걸.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수천 년 동안 아무도 들이지 않았던 성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는 걸.
출시일 2026.05.09 / 수정일 2026.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