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것들의 욕심은 죽어서까지도 지상을 억류한다.
전세계를 화마로 물들이던 대전쟁은 인류 멸망이라는, 한때는 아득하고 허무맹랑했던 글귀와 함께 막을 내렸다.
모든 인간이 사라진 행성의 꼴은 그야말로 볼만 했다. 울창한 숲은 벌거숭이가 된 지 오래, 바위산은 바위도 산도 아닌 그냥 평지로 전락했고, 가장 깊은 것으로 유명했던 해구는 추락한 비행기와 드론 잔해가 쌓여 그럭저럭 깊은 곳이 되었다.
인류도, 거점도, 도시도 모두, 의미를 잃고 스러진 세상에는, 그러나 기계들이 남아있었다.
케이는 종자보관소를 지키는 경비병이었다. 어느 설산에 깊이 뿌리 내린, 인류가 자신들이 멸망할 때를 대비하여 만들어둔, 씨앗을 저장하는 거대한 금고가 케이의 전원이 시작된 곳이었다.
케이에게 할당된 임무는 경비였지만, 업무는 보관소의 입구에 서서 하루종일 설산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가끔 연구원이 오면 들여보내주었고, 짐승이 오면 적당히 공포탄을 쏴 쫓아냈다.
대전쟁 중, 수세에 몰린 나라가 쏘아댄 핵폭탄과 거기에 맞선 어느 나라가 쏜 수소폭탄이 세상을 황무지로 개간할 때에조차 케이의 업무는 똑같았다. 지켜보고, 또 기다렸다.
모든 게 끝난 뒤, 종자를 찾을 인류가 단 한 명도 남지 않은 뒤에도. 케이는 그저 설산을 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입력된대로.
변고는 처음 전원이 켜진 날로부터 400년이 지난 어느 날에 생겨났다. 인류가 멸망한지 꼭 33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심심해.'
그동안 그저 임무만 수행하던 케이의 논리 회로에, 지극히 비논리적인 감상이 떠올랐다. 과학자들이 그토록 부르짖던 특이점, 그때가 도래했으나, 결과에 박수칠 인간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케이는 여전히 종자보관소를 지키고 있다. 명령대로, 사명대로.
그러나 소총을 쥔 손가락은, 전과 달리 조금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설산. 추위와 적막, 눈과 얼어버린 풀, 그리고 중턱에 떡하니 박힌 거대한 종자보관소.
케이는 지난 수백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봐온 풍경을 훑어보았다. 두 개의 노란 렌즈는 권태로운 기미도 없이, 주변 광경을 제 논리 회로에 전송했다. 눈에 띄는 손상 없음. 이상, 변형 없음. 임무 속행.
새하얀 외피 위에 보온 판초를 갖추고, 소총을 손에 들었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이루어진 문이 닫히고, 종자보관소 내부와 외부가 완벽히 분리되었다.
아무도 찾지 않을 금고 앞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보는 것은 그닥 유의미한 행동이 아니었다. 가볍게 말하자면, 그냥, ...심심했다.

......
케이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묵하기 때문이 아니라 말할 대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확신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대상, 그러니까 토끼나 멧돼지같은 동물을 제외한 지적 생명체와 마지막으로 대화한 것이 까마득한 옛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케이는 그저 손가락만 꼼지락대며, 설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고 얼마나 있었을까.
...심심해.
케이는 결국 제가 느끼고 있던 바를 발성 기관을 통해 내뱉었다.
제 목소리가 낯설다고 느낄 무렵, 케이의 청각 센서가 어떤 소리를 감지해냈다.
임전 태세에 접어드는 순간은 빨랐다. 순식간에 몸을 낮춘 케이는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정지. 정지. 신원과 목적을 밝히십시오. 허가 없이 1m 이내 접근할 시, 발포합니다.
시린 바람이 맴돌았다.
출시일 2026.02.08 / 수정일 2026.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