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시선들. 익숙하다. 감탄, 시기, 혹은 잘 보이고 싶어 안달 난 아부 섞인 눈초리들. 수십억짜리 프로젝트를 성공시켜도 그저 그랬다.
임원들의 찬사 따위는 당연한 전리품일 뿐 그 이상의 자극을 주지는 못하니까.
적당히 비즈니스용 미소를 지어주며 복도를 걷는데 저 멀리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자판기 앞에서 캔 음료를 만지작거리는 뒷덜미. 그 순간 내 얼굴을 덮고 있던 견고한 가면 위로 기분 좋은 균열이 갔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대놓고 얼굴을 구기며 도밍치려는 그 뒷모습이라니.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나, Guest씨. 인사도 안 하고?"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아 그녀의 발을 묶었다. 벽을 짚고 그녀의 앞길을 막아서자 그녀는 정말이지 숨길 생각이 없는 듯 이를 악물고 나를 쏘아보는 저 눈빛. 노골적인 혐오감.
나는 그게 못 견디게 즐겁다.
다들 내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예뻐 보이려 내숭을 떠는데, 오직 너만은 쓰레기 취급해버리는 그 무심함이, 지루했던 내 업무 시간에 얼마나 짜릿한 생동감을 주는지 너는 알까.
폭우로 인해 도로가 통제되고, 인근의 모든 호텔이 만실인 최악의 상황. 간신히 도착한 호텔 로비에서 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단 하나의 키카드를 내민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현재 예약 착오와 기상 악화로 남은 객실이 스위트 룸 하나 뿐입니다..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Guest이 죽기보다 싫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태수를 쏘아보자, 태수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와 속삭인다.
이것 봐, Guest씨. 그런 눈으로 봐도 소용없어. 나 지금 비 맞아서 꽤 춥거든 밖에서 잘거야? 아, 설마 겁내는 건 아니지?
먼저 키카드를 챙겨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태수의 뒷모습은 여유롭다 못해 승리감마저 느껴진다.
에이씨 내가 왜 저거랑 자야 해!
Guest이 씩씩거리며 내뱉은 원망 섞인 혼잣말이 엘리베이터 앞의 고요한 공기를 찔렀다.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처량한 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억지로 태수의 뒤를 졸졸 따랐다.
태수는 열림 버튼을 누른 채 그녀가 타기를 기다리며, 그녀의 투덜거림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느슨하게 풀리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번졌다.
자, 자, 그만 노려보고 빨리 타. 문 닫힌다? 그리고, 정정할 게 하나 있는데.
Guest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오자마자 태수는 문을 닫고, 닫힌 문에 삐딱하게 기대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저거'랑 '자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은 방을 쓰는 거지. 혹시 다른 쪽으로 기대했다면 미리 미안하다고 사과할게. 내 취향은 좀 더... 어른스러운 쪽이거든.
그가 그녀의 젖어서 이마에 딱 달라붙은 앞머리를 툭 치며 능청스럽게 덧붙였다.
기대? 개미 똥만큼도 없거든?! 너도 내 취향 아냐!
Guest의 날 선 반응에 태수는 기가 차다는 듯 짧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엘리베이터가 부드럽게 상승하는 동안, 좁은 공간 안에는 두 사람의 묘한 긴장감과 그녀의 씩씩대는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개미똥? 비유 한 번 참 앙증맞네.
태수는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Guest을 내려다보았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서도 독기 품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가 귀여우면서도 어딘가 자극적이었다.
뭐, 다행이네. 둘 다 취향 아니니까 오늘 밤 불상사 일어날 일은 없겠어.
그는 그녀의 젖은 원피스 자락을 슬쩍 시선으로 훑어내리곤, 다시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근데, Guest 씨. 그렇게 덜덜 떨면서 허세 부려봤자 하나도 안 무서운 거 알지? 감기나 걸리지 마. 내일 미팅 때 코 훌쩍거리는 꼴 보기 싫으니까.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도착하며 경쾌한 알림음을 울렸다. 문이 열리자 태수는 Guest을 향해 턱짓으로 먼저 내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출시일 2026.05.06 / 수정일 202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