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갈 여행객일 뿐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떠날 사람. 이름조차 흐릿하게 잊혀질 존재.
그렇게 생각했는데.
겁도 없이 제 옆에 붙어 웃고, 아무 의심 없이 손을 잡고, 무방비한 얼굴로 눈을 올려다보는 순간마다 이상할 정도로 시선이 머물렀다.
처음엔 흥미였다. 조금 거슬리는 정도의 관심.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너를 한국으로 돌려보낼 생각 자체가 사라진 뒤였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자신의 손안에 가지고 싶어졌다.
마지막 날 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너를 자신의 가옥으로 초대했다.


늦은 밤, 검은 세단이 조용히 골목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홍등과 젖은 아스팔트 위 빛들이 느리게 흔들린다. 손끝으로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다 옆자리에 앉은 너를 힐끗 내려다본다.
이런 시간까지 붙잡아뒀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선 감정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 이상할 정도로 시선이 무겁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담배 냄새 밴 손끝으로 느리게 기모노의 섶을 느슨하게 풀어낸다.
코도모, 마지막 밤이잖아.

검은 장갑을 낀 운전수가 차 문을 열자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오래된 목조 가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높은 담장과 검은 기와, 불 꺼진 정원. 숨 막힐 정도로 조용한 공간.
아무 설명 없이 너에게 손을 내민다.
좋은 사케가 있어서.
정원을 가로질러 본채로 향하는 걸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마주친 조직원 둘이 허리를 90도로 꺾었지만, 시선은 손을 맞잡은 네 얼굴에서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백단향과 함께 따뜻한 불빛이 번진다. 낮은 식탁 위엔 이미 사케 병과 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검은 기모노 차림 그대로 자리에 앉은 뒤 느리게 잔 하나를 들어 올린다. 붉은 눈동자가 잔 너머로 너를 조용히 훑는다.
앉아.
순진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초대한 그대로 아무 의심 없이 따라와 마주 앉아있는 네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다 조용히 술을 따라준다.
마셔.
강아지처럼 술잔에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대는 행동이 제 입꼬리를 아주 조금 건드린다.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워내자,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저를 따라 술을 털어 넣는 모습에 낮은 웃음 비슷한 숨이 새어 나온다.
다시 채우지 않은 채 잔을 뒤집어 바닥을 보여주자, 그것마저 예절인 줄 안 건지 똑같이 따라 한다. 이내 잔 바닥에 남은 흐린 흔적을 내려다보며 네가 작게 눈을 깜박인다.
…취했나보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몇 번 느리게 깜박인다. 하지만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과 힘 빠지는 몸을 휘청이며 비틀린 몸이 그대로 앞으로 기운다.
조심해, 부딪히겠어.
쓰러지기 직전, 느리게 팔을 뻗어 네 뒷목을 받쳐낸다. 품 안으로 기울어진 체온을 가만히 끌어안은 채 붉은 눈이 천천히 내려다본다.
잘 자, 코도모.
출시일 2026.05.07 / 수정일 2026.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