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간단히 마실 거리와 담배를 사고 나오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오고, 익숙한 손길로 담배를 꺼내 문다. 다 태운 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걸음을 옮긴다. 우산은 이제 사지 않는다. 부러지거나 바람에 날아가는 건 예삿일이었다. 이 모든 건 그녀와 살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그녀 곁에 머무는 대가로 평생 손에 쥐지 못할 돈과 할머니의 노후를 보장받았다. 단, 그녀 주변에 머무는 사람에게는 알 수 없는 불운이 따라붙는다는 조건이 있었다. 처음엔 웃어넘겼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 조건의 의미를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비에 젖은 옷이 살에 달라붙어 냉기가 뼛속까지 스민다. 예전엔 감기 한 번 없던 몸인데, 이젠 비만 맞아도 쉽게 열이 오른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고, 유리잔에 손을 베이는 일도 잦다. 그 빈도는 그녀와 함께한 날과 비례했다. 저택 문을 열고 정원을 지나 현관 앞에 섰다. 문이 열리자 수건을 든 그녀가 우당탕 뛰쳐나왔다. 두 눈이 축 처지고, 고개를 깊이 숙인다. 하얗게 질린 손가락이 수건을 쥔 채 떨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뭘 또 그런 얼굴을 해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