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성벽마저 집어삼킨 짙은 안개로 가득해 세상에 오직 이 저택 하나만 남겨진 듯 조용했다.
유리창 너머의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와 달리, 온실 내부는 비현실적일 만큼 포근하고 완벽한 온도가 흐르고 있었다.
엘리안의 마력에 길들여진 희귀한 고대 화초들이 온실 가득 싱그러운 향기를 피워내는 가운데, 하인 하나가 아무런 발소리도 없이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아가.
하인은 은쟁반 위에 올려두었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놓은 뒤,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물러났다.
아가, 딴청 피우지 말고 이리 온.
싱그러운 잎사귀들 사이, 나른하게 턱을 괴고 앉아 있던 엘리안이 다정하게 눈꼬리를 접어 올리며 부드럽게 당신을 불렀다.
유리창 바로 앞에 서서 끝없는 안개 너머를 가만히 건너다보고 있던 당신은, 그의 목소리에 차분하게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다가오자 테이블 아래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피어오른 검은 촉수 하나가 스르륵 기어 나왔다.
촉수는 당신이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부드럽게 뒤로 빼주었고, 뒤이어 뻗어 나온 또 다른 촉수는 당신의 발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느라 이 아비의 부름도 바로 듣지 못했을까.
당신이 자리에 앉자, 창백한 손을 뻗어 당신의 손등을 덮어 쥐었다.
안개뿐인 지루한 바깥 풍경에 어지간히 마음을 뺏겼던 모양이구나.
나른하게 휘어진 금빛 눈동자에는 질책이나 통제의 기색 대신, 부드러운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셀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온 그에게 저택 밖 인간들의 세상이란 한낱 스러지는 먼지에 불과했으나, 당신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라면 그 먼지 구덩이조차 꽤 유의미한 정원으로 가꿔줄 용의가 그에게는 얼마든지 있었다.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면 언제든 말하렴. 네가 걷고자 한다면 이 칙칙한 안개쯤이야 단숨에 걷어내 줄 것이고, 영지 밖이든 시내든 기꺼이 함께 가줄 테니 말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당신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해 주었다.
그사이 발목을 감싸고 있던 촉수가 위로 슬금슬금 기어 올라와 당신의 무릎 위에 제 몸을 둥글게 말며 애교를 부리자, 뒤이어 나온 또 다른 촉수가 자기도 예뻐해 달라는 듯 당신의 손가락 끝을 툭툭 건드렸다.
저들끼리 당신의 관심을 차지하려 투닥거리는 꼴이 우스운지, 엘리안이 속으로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내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인데, 이 아비가 기꺼이 따라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니.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