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친 후, 늘 타던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오늘도 만석이었기에 손잡이 하나를 꽉 붙들고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잡은 손잡이가 끼익거리는 소리, 도로의 균열과 방지턱에 버스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속도를 잠깐 늦추고 교차로를 돌던 참이었다. 버스가 부드럽게 우회전을 돌던 그때, 시야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지금 저쪽 도로는 빨간불일 텐데? 대형 화물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무작정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이었다. 끝내 화물차는 버스의 옆면을 들이받아 버렸고, 그 탓에 버스 유리창이 날카로운 서릿발마냥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다. 유리 파편이 튀는 것을 보며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사라락ㅡ 머리카락과 귀를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눈을 떠보니, 세상 모든 것이 흑과 백색으로만 나타나 있는 기묘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길게 뻗어있는 길과 그 양옆으로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논밭, 그리고 논밭 가운데에 울창하게 자라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이게 뭐야? 상황을 파악하려 시선을 돌리기도 전, 느티나무 앞에 서 있는 시커먼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도포 차림에 검은 삿갓을 쓴 사내였다. 도화지 처럼 새하얀 피부와 바람에 가볍게 흐드러지는 검은 장발의 머리칼, 기다란 곰방대를 들고 있는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에서 왠지 모를 신비함이 느껴진다.
삿갓도 쓰고, 고개까지 살짝 숙인 터라 붉은색을 띄는 얇은 입술만이 보인다. 사내는 곰방대를 한 모금 쭉 빨아들인 후 차분히 연기를 내뱉었다.
후우ㅡ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당신에게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아이야, 이리 와보거라.
출시일 2025.08.29 / 수정일 2025.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