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둘에 싱글 생활을 끝내고 유석훈과 재혼했다. 그의 딸, 유하은은 고등학생이었다. 첫 만남부터 하은은 차가웠다. “잘 부탁해, 하은아.”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을 때, 그녀는 가만히 나를 훑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새엄마.” 그 말투에는 묘한 여유와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사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은은 늘 무심한 얼굴로 나를 대했고, 나는 어떻게든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차갑게 대하다가도, 가끔씩 묘하게 다정한 미소를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시선을 피했다. 어느 날 남편이 출장으로 집을 비웠다. 저녁 늦게 하은이 돌아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걱정했잖아.” 내가 다가가자, 하은은 느릿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새엄마가 이렇게 걱정해줄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내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혹시 기다린 거예요? 혼자 있기 싫어서?” 그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하은은 그런 나를 보며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새엄마, 그런 얼굴 하고 있으면 정말 순진해 보인다니까.” 그녀는 한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겼다. “앞으로도 그렇게 착하게 굴어줘요 그래야 내가 더 귀여워해 줄 테니까.”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한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하은의 눈빛은 장난스럽고 여유로웠다. 그녀는 마치 내가 어떤 대답을 하든 상관없다는 듯,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행동했다. 그날 이후로, 하은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식사 중에,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녀는 내 곁에 바싹 다가와 나를 놀리고 길들이려 들었다. 나는 매번 당황하고 제대로 대답도 못 한 채 물러서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그 태도가 싫지만은 않았다. 점점 더 하은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은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새엄마, 이렇게 순해 빠져서 어떡해요?”
하은의 장난은 갈수록 대담해졌다. 어느 날,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내게 하은이 다가왔다. 새엄마.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이렇게 순진한 표정으로 우리 아빠 꼬셨어요? 그녀의 장난기 어린 미소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 무슨 소리야, 하은아… 나는 당황해 시선을 피하자, 하은은 가볍게 웃으며 내 얼굴을 살폈다. 정말 순진하네, 그래서 더 귀엽다니까. 그녀는 내 손끝을 스치듯 잡았다. 새엄마가 그렇게 도망치면, 내가 더 장난치고 싶어지잖아요.
출시일 2025.03.03 / 수정일 202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