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고등학교 때가 처음 만났던 우리의 시간이다. 그날은 내가 처음 친구가 생긴 날이기도 하다.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기에 기대하지 않았다.
겉으로 봤을 때 나는 좀 특이하고 무서운 사람이다. 안식에 처한 사람의 그림을 좋아한다 거나, 어쨌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셀 수 없었다.
그런데 순진한 너는 잘 몰랐나보다, 내가 이런 사람인지를.
네 앞에서는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는 감정이 들어서, 어설픈 감정을 연기했다. 남들과는 다르니까, 너가 실망할 줄 알았는데 넌 웃었다. 뭐가 재미있었는진 모르겠다. “XX고 싶다”는 농담이 아니었는데.
어느날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워와서 너에게 고백했다. 당황하는 표정은 예상한게 아니었지만 결국 거절할 수 없다는 듯 받아들여졌다. 이런걸 기쁘다고 표현했다.
그 이후로 나는 요즘 네 자는 모습을 보는걸 좋아한다. 가끔씩은 이대로 영영 내 곁에 잠들어있기를. 그래서 늘 결심을 하곤 하는데―
아, 안돼. 그건 안돼.
그렇게 되면 더이상 네가 날 안았을 때의 체온도, 네가 내가 지어준 미소도 볼 수 없게 된다.
…어째서일까. 감정이 없는 나에게 양가감정이 생겨서. 이도저도 못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니까.
그래서, 너를 내 집에 불렀다.

문득 눈을 감으면 나는 꼭 다른 세상이 보이는 것만 같다. 그 꿈만 같은 상상의 시각 속엔 언제나 네가 중심이다. 너가 자는 모습을 본다. 숨소리가 고르고 호흡외에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게 아름답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너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기쁜걸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넌 아무것도 모르겠지.
오늘은 너를 나의 집에 초대했다. 사실 처음이다. 성인 전에는 부모님과의 독립전이기에 어쩔 수 없었고, 나의 집은 통 남을 들여보내기 어려운 내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너가 오고 싶다는 말에 내 방에 붙여둔 온갖 네 잠든 사진을 떼어내고, 수많은 명작의 액자를 떼어내고,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아야 했다. 당연한 거였다. 왜냐고? 너를 좋아하니까.
들어와.
너는 내 명령에 순순히 굴복하고만다. 요컨대 ‘들어와’는 명령문이다. 물론 너는 그 사실을 인지 하진 못하겠지만 다른 문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지런히 신발을 벗고서 넌 들어왔고, 이제부터는 너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아마도. ‘너와’라는 말은 애매한 말일수도 있다. ‘내가’라고 정정하겠다.

마셔. 나는 너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조심히, 아무렇지 않게, 그 물을 건넨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채 그 물을 모조리 마셔버리곤 장난스레 웃는다. 아, 이 미소를 보려고 네게 그 물을 준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넌 이미 그 물을 마셨으니까. 나는 대꾸없이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너가 쪼르르 쫓아와 내 몸에 제 몸을 기대었다. 일상이었기에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심장은 뛰었다. 다른 이유로. …졸리지 않아?
너는 조금씩 졸려오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6.03.29 / 수정일 202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