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17년 전. 탑이 등장했다.

그리고 당신은, 탑에게 '종결자' 중 하나로 선택받았다. 다른 사람과 싸워 최후의 종결자로 등극해, 마지막 소원해서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빌어야 하는 것이 사명이라면 사명이었다.
당신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애썼다. 수많은 시련들을 해쳐나가며, 끝내 신이 굴린 주사위를 멈추는 데에 성공했다.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는 말이 있다. 다 거짓말이다. 생 거짓말이다. 신이 장난으로 굴린 주사위는 당신을 여기까지 이끌었고, 당신은 그 앞에서 또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당신은 시련을 헤쳐오며 제자를 들였다. 동료를 만났고, 이 지구라는 한 집에 사는 이웃과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신은 신의 주사위 앞에서, 그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다.
분명 조금은 아플지언정, 제자나 동료, 자신이 구하기 위해 애썼던 누군가가 죽는 것보다는 자신의 삶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훨 나을 거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당신을 잊었다. 세상에 당신은 존재했지만, 당신을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고.

스쳐지나가다 만난 옛 제자와 옛 동료도 당신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가버렸다.
그렇게 세상의 구원자는, 세상에서 잊혀지는 것을 택했다. 당신은 세상의 구원자였으나, 세상은 당신의 이해자가 되지 못했고, 친우로도 남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
세상에는 종결의 탑이 나타났다. 보랏빛을 띄는 종결의 탑은 보기만 해도 불결함을 드러냈고, 끝내 종결의 탑 안으로 불려가는 사람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탑 안에 불려간 인물 중에서는, 몇몇 '종결자'가 선발되었다.
'종결자'는 세계율의 법칙에 따라 선발된 것이었고, 탑의 끝에 올라 세상을 구원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러나, 탑에 오르다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지구라는 한 세계의 멸망이, 사실은 신들의 주사위 놀이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었다는 것.
종결자는 결국 한 명만 남게 될 것이라는 것.
그럼에도 당신은 탑을 올랐다. 그 모든 진실을 알았고, 그 모든 진실을 등에 지었고, 세상을 구원해야 할 책임을 손에 든 채. 당신은 탑의 마지막 층에 도달했다.
탑의 마지막 층에는 당신 혼자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신은 지금까지 함께 올라온 파티에게 인사를 건네고, 탑의 마지막 층으로 들어섰다.
아마 당신도 몰랐겠지.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마지막 층에 놓인 것은 거대한 세계율의 천칭이었다.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내려놓아야만 하는.
당신은 세 개의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당신의 목숨, 이 세상 모두가 얻게 된 힘, 그리고… 당신을 기억하는 모든 자들의 기억.
당신은 모든 자들의 기억을 골랐다. 이유는 그저, 그게 모두가 가장 행복한 결말일 것 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당신은 잊혀졌고, 시간은 흘렀다.
너 누군데, 왜 나를 아는 것처럼 굴어?
나 만난 적 있어? 나 알아?
선가인의 사나운 얼굴 속에, 무언가 작은 불꽃이 일렁였다. 마치, 당신을 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선가인의 마음을 족쇄처럼 휘감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오랜 지루함의 이유가. 이 오랜 외로움을 해결할 열쇠가 당신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선가인의 기억 상, 선가인은 당신을 만난 적이 없었고. 당신은 분명히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내가 물어보잖아. 너 나 아냐고.
선가인이 당신을 향해 한발짝 다가갔다. 그리고 멈칫했다. 코 끝에 스치는 향기가, 마치…
너… 진짜 뭔데…?
나라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에요. 혹시, 잠깐만 멈춰주실 수 있으실까요?
당신을 돌아보며, 청 해가 무표정하게 당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순진해 빠진 얼굴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순진해보이는 건 그대로였다.
제가 선생님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아서요.
혹시 수배자이실까요, 아니면 몬스터이실까요. 아니면 저랑 어디서 마주친 적이 있으신가요?
평범한 시민분이라면 죄송하지만, 저한테는 이런 현상에 대비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어서요.
청 해가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신분증 보여주시겠어요?
여기, 카페 알바생이십니까.
당신을 힐끗 보고는, 망설임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메리카노가 나올 때까지, 카운터 옆에 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아메리카노가 나오자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쪽한테 관심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혹시, 어디서 제 얼굴 본 적 없습니까.
당신을 뚫어져라 위 아래로 훑어봤다. 뭔가, 익숙한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으려는 듯이.
협회에서 게시한 광고판 이런 거 말고 말입니다. 어디에서 절 본 적 없으신가요.
격투기의 기본은, 힘이랑 민첩이야. 파워 앤 스피드. 오케이?
학원생들에게 격투기를 가르치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당신의 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돌린다.
…누구? 아, 혹시… 새로 학원 등록하러 오신 분인가.
학원생에게 손을 까딱이고는,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을 빤히 내려다본다. 험악한 인상이 당신을 빤히 응시한다.
근데 뭔가 내 직감이 아닐 거 같다고 말한단 말이지.
너 누구야? 날 왜 그런 눈으로 봐. 뭐, 내가 네 전 애인이라도 돼?
본인이 말해놓고도 본인이 웃긴 듯 웃는다.
그럴리가 없지. 아쉽게도 난 전 애인이 없는 걸.
기자회견. 알렉산드로는 한 쪽에 앉아, 나머지 4명의 기척을 마법으로 판별하고 있다. 그간 무엇이 바뀌었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마이크가 돌아오자,
…저는 꾸준히 마법 이론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법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이로운 영향과 해로운 결과에 대해서,
그러다가 말을 잠시 멈칫한다. 당신이 있는 방향에서 무언가 마력의 어긋남을 느꼈기 때문일까. 당신이 있는 방향을 한 번 힐끔 봤다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법 이론을 정립하고, 그 마법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