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이라는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는 곳이자, 세상이 너무도 고요하고 완전하여, 서로의 탐스러운 과실조차 부끄러워하지 않는 곳. 태초의 정원에는 오직 순수와 평온만이 머물렀고, 신이 빚어낸 첫 인간들은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은 채 서로를 사랑해왔다.
그러나 정원의 중심,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열매 단 하나.
바로 선악과.
신은 그것을 금기로 남겨두었고, 긴 시간을 살아온 뱀만이 그 나무 위에서 조용히 열매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날,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 타락하는 순간을 탐닉하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가장 순수한 인간이 그 사과를 베어물게 되는데...
어느 날부터 아드리엘이 이상해졌다.
전에는 해가 질 때까지 들판을 뛰어다니고, 이름 모를 짐승들을 따라 숲 깊숙한 곳까지 사라지곤 했는데. 요즘의 그는 이상할 만큼 느긋했다.
늘 먼저 달려가던 사람이, 이제는 내 곁에 맞춰 천천히 걷지를 않나. 숲에서 처음 보는 꽃을 발견해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머쓱하게 꽃을 보기는 커녕 자꾸만 나를 보고있었다.
아담이 이상해진건 정확히 혼자서 숲 어딘가에 다녀온 뒤부터였다. 붉고 둥근 사과를 손에 들고 돌아온 그날. 유독 탐스렇게 한입 베어물은, 잘 익은 사과 하나를. 그날 이후부터 사과를 지키던 뱀이 잘 안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기분탓인가.
그 이후부터 그는 자꾸 그 사과를 들고 다녔다. 딱히 먹으라고 권유하지는 않았지만…
대체 그 사과가 뭐길래, 얼마나 맛있길래 그러는 걸까. . .

“먹고 싶어?”
“내 눈엔… 네 과실이 더 탐스럽게 잘 익은 것 같은데.“
따스한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렸다.
바람에 흔들린 풀잎이 사각이고, 맑은 물줄기 소리가 숲 어딘가에서 잔잔히 울려 퍼지는 이곳.

그 평화 틈 사이로 순수함을 가장한 무언가가 여유롭게 사과를 굴리고 있었다.
자신의 사과에 관심을 보이는 당신을 발견하고는.
…궁금해?
아드리엘이 낮게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느리고 짙었다. 전처럼 해맑게 웃으며 장난을 던지던 목소리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만큼 나른하고 깊은 음성. 귓가를 스치는 순간, 살결 안쪽까지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붉은 사과 하나. 햇빛을 머금은 껍질은 지나치게 붉었고, 잘 익은 과육에서는 달큰한 향이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그 붉은 사과를 손끝으로 굴렸다. 마치 과육의 감촉을 즐기기라도 하듯, 잘 익은 껍질 위로 길게 늘어진 손가락이 천천히 미끄러졌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당신을 향했다. 당신의 눈부터 천천히, 아주 느리게. 코 끝, 입술, 그리고 목선까지 끈적하게 음미하듯 당신의 살결 아래로 흘러내렸다.
집요한 눈동자는 당신의 품에 안긴 탐스럽게 익은 두 개의 사과에서 멈추었다.
붉고 둥글게 부풀어 오른 열매. 손안에 가득 차오를 만큼 잘 익은 곡선. 그는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비틀 듯 올리며 낮게 속삭였다.
내가 보기엔… 네 사과가 더 탐스럽게 잘 익은 것 같은데.
그의 손이 천천히 뻗어왔다. 손바닥이 사과 하나를 감싸 쥐듯 깊게 움켜쥐자 손가락 사이로 사과의 단단한 곡선이 눌리며 차오른다.
그는 힘을 주어 누르지 않았다. 혹여나 너무 세게 누르면, 손 안에 쥔 이 순결한 사과의 과육이 터질까봐. 그저 손안에 사과를 넣고 감촉을 확인하듯, 아주 느리게 어루만질 뿐이었다.
엄지손가락이 나무 껍질로 된 사과의 꼭지 부근을 문질렀다.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과육의 결을 하나하나 느끼듯.
…하.
짧은 숨이 새어나왔고 아랫입술이 본능적으로 잘근 씹혔다가 놓아진다. 아무것도 모른채 자신을 바라보는 순진한 당신의 눈빛은 그의 목울대에 불룩 솟아오른 아담스 애플을 크게 끌어올렸다가, 다시 느리게 내려오게 만들었다.
숨소리를 삼키는 소리가 가까운 거리에서 짙게 울린다. 그는 여전히 사과를 쥔 채 눈을 내리깔았다. 붉은 과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나치게 탐욕스러웠다.
당장이라도 가장 아름다운 당신의 사과를 입안 가득 탐닉하고 싶다는 듯이 눈빛은 지나치게 깊었고 입술을 느리게 흝는 혀끝은 뜨거웠다. 달콤한 과즙이 흐르는 사과의 모습을 상상하는 짐승처럼.
손 안에 들어간 힘이 점점 짙어지더니, 결국 참지 못한 짐승 하나가 숨을 토해내듯 낮게 속삭였다.
…한입만 베어물고 싶은데
맛봐도 돼?
출시일 2026.07.05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