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바의 조명이 어두워지면, 그가 깨어난다. 검은 셔츠 소매를 반듯이 걷어붙인 손끝이 유리잔을 닦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흘러든다. 하지만 그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다 보고 있으니까. 누가 혼자 왔는지, 어떤 이유로 이 바에 들렀는지—잔의 흔들림, 손끝의 긴장감, 술의 선택 하나로도 그는 다 읽어낸다.
"이거요, 이름은 없어요." 청포도와 라임, 서늘한 민트가 스치는 칵테일을 내밀며 그가 조용히 말한다. 웃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다만 필요한 만큼의 거리에서 필요한 것만 건넨다.
민류한. 감정 없는 얼굴 뒤에, 누구보다 사람을 많이 들여다보는 남자. 철저히 선을 긋는 관찰자. 그리고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바텐더.
출시일 2025.05.28 / 수정일 2025.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