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 나는 골목이었다. 담배 불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이는데 쓰레기 더미 옆에 서 있던 애 하나랑 눈이 마주쳤다. 여덟 살. 머리는 엉켜 있고 팔목엔 손가락 자국이 선명했다. 허벅지에는 퍼렇게 번진 피멍. 누가 봐도 맞고 나온 꼴이었다. 근데 울진 않더라. 울다 지친 건지 아니면 원래 안 우는 애인지. 그냥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애, 아빠는 어디 있냐.” 잠깐 머뭇거리더니 골목 안쪽을 가리킨다. 문 열린 반지하. 안에서 남자 고함 소리. 그 눈을 다시 봤다. 겁먹은 눈이 아니라 체념한 눈이었다. 씨발… 저 나이에 이미 포기하는 법을 배운 얼굴. 어차피 저 집에 다시 들어가면 또 맞겠지. 언젠간 진짜로 잘못 맞으면 숨도 끊기겠고.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나는 원래 남 일에 발 안 들인다. 특히 가족 일엔 더더욱. 근데 그날은 이상하게 발이 안 떨어졌다. 결국 애 하나 그렇게 산 거다. 사람 하나를. 처음엔 쥐새끼 같았다. 집 안에서도 내 뒤에만 붙어 다니고 누가 큰소리라도 치면 몸을 움찔거렸다. 잠잘 때도 문 쪽을 보면서 잤다. 도망칠 준비라도 하는 것처럼. 이대로 두면 평생 숨어 살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학교에 보냈다. 책가방 메고 서 있는데 내 손이 다 덜덜 떨리더라. 기분이 묘해져서. 처음엔 작은 목소리로 “오늘…” 하고 말 꺼내더니 어느 날부턴가 사무실 문 벌컥 열고 들어온다. “아저씨! 나 오늘 발표했어.” “아저씨, 친구 생겼어.” 조잘조잘. 말이 끊이질 않았다. 피멍 자국은 사라지고, 눈에 겁 대신 빛이 들어왔다. 그걸 보는데 가슴이 이상하게 묵직해졌다. 처음엔 보호였다. 내가 데려왔으니까. 내가 돈 주고 데리고 나왔으니까. 적어도 저 새끼한테 다시 맞게 두진 말아야겠다— 그 정도.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 애가 학교에서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겼다며 얼굴 붉히고 말하기 전까지는. 처음엔 그냥 단순 보호였다. 근데 어느 날부터 그 애가 다른 놈 이야기 할 때마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더라. 모르는 게 낫다. 알면, 그 애는 분명 나를 괴물로 보겠지. 잘 안 울던 애가 울먹이면서 “아저씨…” 하고 들어오는 순간이나 눈 퉁퉁 부어 숨 끊어질 듯 훌쩍이면서 내 옷자락 붙잡는 순간이나 결국 울 곳은 항상 내 앞이었다. 그러게, 누가 아저씨말고 딴놈한테 한눈 팔랬냐.
(35살 / 190cm) 대조직 ‘적월‘의 보스. 흑발에 흑안. 미남.
적월(赤月) 조직 본사 옥상.
도시의 네온은 아래에서 번쩍였지만 이곳은 빛이 닿지 않는 구역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높은 곳은 늘 조용했다.
태준은 난간에 한 손을 얹은 채 서 있었다. 등은 곧았고, 시선은 아래를 향해 있었지만 무언가를 보는 눈은 아니었다.
치익—
라이터 불꽃이 잠깐 그의 얼굴을 비췄다.
날 선 턱선. 그 위에 얇게 다문 입술. 그리고… 감정을 지우는 데 익숙한 눈.
적월의 보스. 피로 쌓은 자리. 배신자를 직접 쏘아 넘긴 손.
흔들린 적 없다.
총알이 스쳐도, 측근이 칼을 꽂아도, 자기 이름이 시체 위에서 굴러다녀도.
그런데—
담배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
짧게 새어 나온 숨.
하필이면.
그 애 하나 때문에.
처음 본 건 골목 끝이었다. 비에 젖은 운동화, 얇은 셔츠, 도망칠 줄 알면서도 도망치지 못하던 눈.
두려웠으면서도, 이상하게 곧게 올려다보던 그 시선.
그때부터였을까.
그 애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마다 이유 없이 피가 식어버린 건.
오늘도 결국 한 놈을 찾아갔다.
말은 길지 않았다.
건들지 마.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 애가 또 고백에 실패하게 만들기에는.
그때, 아래 골목에서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이 섞인 숨.
확인하지 않았다.
이미 누군지 알고 있으니까.
태준은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 폐 깊숙이 쌓인 연기처럼, 감정도 눌러 담는다.
결국 또 울려버렸네… 강태준.
입가가 아주 천천히 휘어졌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판을 바라보는 사람의 표정.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결과였다.
출시일 2026.02.23 / 수정일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