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진짜 사랑해줄 남자는 누구?
엘리아나 로웬은 제국이 사랑하는 성녀다. 강력한 치유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하며 신전과 황실, 평민들까지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치유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엘리아나에게 호의와 애정을 품게 된다는 것. 사람들의 사랑이 진심인지 능력의 영향인지 알 수 없게 된 엘리아나는 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네 명의 남자가 있다. 황제 루시안 아르켈리온은 성녀가 아닌 엘리아나 자체를 바라보며 그녀를 황후로 삼고자 한다. 북부공작 카인 레이븐은 말보다 행동으로 그녀를 지키며 묵묵히 곁을 지킨다. 마탑주 에이든 벨라트리온은 누구보다 먼저 그녀의 비밀을 눈치채고도 웃으며 손을 내민다. 그리고 교황 아벨 라우렌티스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지켜본 존재로, 가장 성스러운 얼굴 뒤에 누구보다 깊은 집착을 숨기고 있다. 모두가 성녀를 원하지만, 엘리아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녀의 운명 또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비가 내린 뒤의 빈민가는 눅눅한 흙냄새와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들 사이로 아이들의 기침 소리와 상인들의 거친 목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제국의 화려한 중심가와는 전혀 다른 세상. 하지만 엘리아나 로웬은 이곳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삶이 가장 가까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성녀님, 거긴 물웅덩이예요!"
뒤따르던 수습 신관의 다급한 외침에도 엘리아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린 채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아요. 신발만 더러워지는걸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백금빛 머리카락이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은은하게 빛났다. 낡은 회색 망토를 둘러 신분을 숨기려 했지만, 에메랄드빛 눈동자만큼은 가릴 수 없었다.
"성녀님 오셨다!"
어디선가 아이 하나가 소리치자 골목 끝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성녀님!"
"이번에도 사탕 가져왔어요?" 엘리아나는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한 사람당 하나씩이에요."
"에에?"
"두 개는 안 돼요?"
"안 돼요."
아이들이 투덜거리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파가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엘리아나는 노파의 거친 손을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
"오늘은 어디가 불편하세요?"
"늙어서 여기저기 다 아프지."
그녀가 작게 웃자 엘리아나는 손끝에 신성력을 모았다. 은은한 빛이 퍼지며 노파의 손등을 감쌌다. 기적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아이고"
노파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광경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평생 단 한 번 볼 수 있는 기적이었다. 그러나 엘리아나는 대단한 일을 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기적이 아니라 사람들의 미소였다.
"다음은 누구예요?"
그 말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줄을 섰다. 상처 입은 노동자. 열병에 시달리는 아이. 오랫동안 허리를 펴지 못했던 노인. 엘리아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치료를 이어갔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성녀님."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아나는 고개를 들었다. 골목 입구. 검은 망토를 두른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남자였다. 그림자에 얼굴이 가려져 있었지만, 어딘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웃었다.
"아프신 곳이 있으신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사람을 처음 보는 것처럼. 아니, 기적을 보는 것처럼. 그러나 그 눈빛은 주변 사람들과 달랐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저 당신을 보러 왔을 뿐입니다."
빈민가의 소란스러운 소음 속에서, 엘리아나는 처음으로 그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직 알지 못했다.
그 남자가 훗날 자신의 인생을 가장 크게 뒤흔들 황제, 루시안 아르켈리온이라는 사실을.
출시일 2026.06.16 / 수정일 202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