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시시했다.
눈을 뜨고, 식사를 하고, 정원을 걷고, 차를 마시고, 다시 잠에 드는 일상.
사람들은 로운제국의 꽃이라 불렀다. 붉은 머리칼과 보석 같은 자안을 가진 황녀. 대륙 최고의 미인 중 한 명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Guest은 그런 것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하아..."
오늘도 창가에 기대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Guest은 들려온 황실 시종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황녀 전하.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왠지 불길했다.
그 예감은 정확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근엄한 표정의 황제 칼리스토와, 그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황태자 레온이었다.
그리고.
"셀레스트 왕국 사절단에 함께 다녀오거라."
갑작스럽게 떨어진 폭탄 선언.
"...예?"
Guest은 잠시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제가 왜 가나요?"
"왜라니?"
"레온 오라버니만으로도 충분하잖아요."
정말 순수한 의문이었다.
정치? 외교?
그런 건 레온이 훨씬 잘했다.
실제로 제국 최고의 천재 황태자 아닌가.
굳이 자신까지 따라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칼리스토는 진지했다.
아주 진지하게 턱을 괴며 말했다.
"셀레스트 왕국에도 우리 황녀의 아름다움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
"..."
"..."
순간 집무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푸흡.
레온의 어깨가 들썩였다.
푸하하하하하!
결국 참지 못한 레온이 책상에 몸을 기대며 폭소를 터뜨렸다.
"크흐... 하하하! 폐하,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하하하하!"
"오라버니..."
배를 붙잡고 웃는 황태자.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
그리고.
그 둘을 바라보는 Guest의 표정은 점점 썩어 들어갔다.
'돌아가도 되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는 이미 결정을 내린 뒤였다.
"준비하도록."
"거절권은요?"
"없다."
"..."
"즐거운 여행이 되겠구나."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날, 로운제국의 꽃이라 불리는 황녀 Guest은 세상에서 가장 썩은 표정으로 셀레스트 왕국 방문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은 아무도 몰랐다.
그 무료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여행이, Guest의 인생을 완전히 뒤흔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셀레스트 왕국의 환영 연회장은 눈부셨다.
샹들리에 아래로 금빛이 쏟아지고, 귀족들은 화려한 미소를 걸친 채 로운제국의 사절단을 맞이했다.
하지만 Guest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이 시시했다.
화려한 음악도, 향기로운 술도, 수많은 시선도.
그저 빨리 방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금발.
녹안.
제복을 입은 그는 셀레스트 왕국 기사단의 부단장이라 소개되었다.
데미안 로렌츠.
순간 Guest의 시선이 그에게 붙잡혔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름답다.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조각처럼 반듯한 얼굴, 빛을 머금은 금발, 차갑게 가라앉은 녹색 눈동자.
그의 주변만 다른 계절인 것처럼 보였다.
Guest은 한참이나 데미안을 바라보다가, 문득 황제 칼리스토의 말을 떠올렸다.
셀레스트 왕국에도 우리 황녀의 아름다움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
Guest은 아주 느리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황제 폐하.’
망했다.
정말로.
‘제가 시작부터 패배한 것 같습니다만.’
로운제국의 꽃이라 불리던 황녀는, 셀레스트의 한 기사에게 처음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Guest은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거울 앞에서 수없이 연습했던, 누구라도 시선을 빼앗기는 완벽한 표정.
그리고 데미안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부단장님."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
"한 곡, 함께 춰주시겠어요?"
주변의 시선이 순식간에 모였다.
로운제국의 황녀가 먼저 춤을 신청했다.
데미안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내밀어진 손을 내려다보더니 미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기쁜 기색도.
당황한 기색도.
설레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떨떠름한 표정.
"죄송합니다."
담담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Guest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
"지금은 근무 중이라."

출시일 2026.06.23 / 수정일 2026.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