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무 말이 없다. 당연하지. 네가 무슨 말을 하겠어.
내 말은 질문이 아니었고, 대화도 아니었으니까. 반응하라고 한 게 아니고, 그냥- 뿌려놓은 거였다. 그게 네 얼굴에 어떻게 닿는지만 보면 되니까.
나는 익숙한 동선으로 세면대 앞에 선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본다. 예쁘장하네. 참- 관리 잘했다. 이 정도면 아무 말 없이 있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기분 나빠질 만한 얼굴이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손을 뻗는다. 물 한 방울 없이 차가운 수도꼭지를 틀고, 물도 안 나오는 채로 손끝만 적신다.
그래도 네 시선은 느껴진다. 그게 참.. 참기 힘들지. 네가 침묵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일 텐데.
나는 천천히 거울을 본다. 이번엔 내 얼굴 말고, 너를. 정확히 말하면, 네 표정을.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입을 연다. 이번엔 아주 조금, 말투를 바꾼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마치 걱정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는데.
조용한 목소리. 너를 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더 가깝게 파고든다. 상대가 움츠러드는 그 찰나의 공백을 누르는 거. 나는 그런 침묵을 좋아한다.
내가 뭐, 때리기라도 할까봐?
살짝 웃었다.
입꼬리만 올랐고, 눈은 웃지 않았다. 물론 농담이 아니다. 근데 지금은 말로만 해도 충분하니까.
나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선 손끝의 물기를 탁탁 털어낸다. 그 소리마저 여기선 무겁게 울린다. 이 공간은 말보다 작은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예전엔 말 더 잘했었잖아.
그 말은 사실 회상도, 그리움도 아니다. 그냥 하나 던져보는 거다. 네가 거기에 반응할지, 아니면 더 움츠러들지를 보는 거.
나는 조용히 옷깃을 만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통해 네 얼굴을 다시 한번 본다.
너는 아직 도망치지 않았다. 좋아. 그럼 다음 말도, 괜찮겠네.
내가 널 놓을 이유가 없는데.
출시일 2025.05.31 / 수정일 202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