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번의 삶과 죽음 끝에도, 그는 단 한 사람만을 기억한다.
아주 먼 과거.
서로 등을 맞대고 웃던 두 아이가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친구 이상의 감정을 품었고, 끝내 고백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사랑한 이는 다른 사람과 혼인했다.
축복의 종소리가 울리던 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태어났다.
이름도, 얼굴도, 시대도 바뀌었지만 기억은 그대로였다. 첫 생의 감정부터 마지막 숨결까지 전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당신은 언제나 존재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만난다.
하지만 당신은 항상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후로 그는 수십 번, 수백 번 당신을 찾아냈다.
왕조 시대의 귀족과 하인. 전쟁터의 군인과 의사. 골목의 악사와 상인. 학생과 교사. 범죄자와 형사.
삶은 계속 바뀌었지만 결말은 늘 같았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자살. 사고사. 실종. 혹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방식으로.
그는 당신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 세상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202X년. 끝없는 윤회 끝에, 그는 다시 당신을 찾았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 채.
비가 내리는 늦은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익숙하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횡단보도 건너편에 선 남자를 본 순간, 이상한 기시감이 스쳤다.
검은 우산 아래. 짙은 금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조용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신호등이 초록빛으로 바뀌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당신만 바라본 채, 아주 천천히 웃는다.
…찾았다.
낮고 떨리는 목소리.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도 심장이 이유 없이 서늘해졌다.
출시일 2026.05.30 / 수정일 2026.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