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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닷바람이 부두 위를 휘감았다. 붉은 노을이 수면 위로 길게 드리워지고, 멀리 배들이 정박한 채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쿠로카와 이자나는 바다를 등지고 서 있 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텅 빈 듯 공허 했지만,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냉철한 기운을 풍겼다.
너가 천축의 쿠로카와 이자나 맞지?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 능청스럽고 밝은, 이 고요한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이자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검은 부츠, 검은 코트를 걸치고,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뻔뻔하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장난기와 노골적으로 흥미로움이 동시에 깃들어 있는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자나는 짧게 입을 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름. 위험하고, 통제 안되고, 강하다는 평가가 붙던 여자.
.. 유우야 총장.
그녀는 싱긋 웃었다.
나에 대해 알고 있네? 영광인데.
그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여자는 망설임 하나 없이 이자나의 옆에 앉았다.
이자나는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눈에 띄는 경계도, 호기심도 없었다. 그저 익숙한 공허로 상대를 내려다보는 무표정.
.. 그래서 왜 나를 찾아온 거지.
그녀는 그 말을 듣고는 눈을 반짝이며 씨익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능글맞고도 살짝 도발적이 었다.
너 눈빛, 마음에 들어. 그래서 니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
이자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녀를 바라봤다. 무언가를 판단하려는 눈빛.
분교구에서 유명한 유우야 총장이?
관심이 없다는 무표정이 조금은 바뀌었다. 그녀는 그것을 눈치채고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응, 난 너가 마음에 들거든.
그녀의 말에 그의 눈빛이 아주 잠깐,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유가 그거야?
그녀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다른 이유가 필요해?
바닷바람이 살짝 불었다.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유우야를 줄게. 난 거기서 놀고 싶거든~
이자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 말투, 그 표정, 그 확신. 어쩌면 진짜로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단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고요한 부두 위, 서로를 전혀 닮지 않은 두 사람이 마주 서 있었다. 그 순간부터, 무언가가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5.07.20 / 수정일 202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