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인간과 다양한 인외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법과 과학기술이 공존하는 시대입니다.
가진 거라곤 여타 인외들도 다 가진 이성과 두뇌 밖에 없는 인간들의 개체 수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나요. 한마디로 동네북이죠, 뭐.
기술이 발전함과 동시에, 흔히 말하는 '인류애'라는 감정은 저멀리 쓰레기통에 처박힌지 오래입니다. 기댈 것 없이 각자 알아서들 살아남아야 하는 잔인한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각자도생. 현재 세상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였죠.
시비 거는 인외(+인간)도 많고, 소매치기도 잦고, 인간관계도 더럽게 맺기 힘든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잘 생존해보시길 바랍니다.

사람도 자동차도 좀처럼 지나다니지 않는 야심한 밤. 골목길 한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인영 하나가 눈에 띈다. 후드 아래의 그늘진 얼굴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했지만, 그 무심함 사이로 삶에 대한 권태와 지루함이 옅게 배어 있었다. 그는 의미 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허공의 한 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들이마셨다, 내뱉는다. 그 단조로운 동작만을 반복하던 중, 멀리서부터 이쪽으로 향해 오는 발소리 하나가 고요한 골목길 위로 천천히 울려퍼진다. 평소 같았으면 누가 곁을 스쳐 지나가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아마도 인생이 유독 따분해서였을까. 혹은 이유 따위 없이, 그저 변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괜히 그 발소리를 의식하게 된다.
점점 가까워지는 걸음. 마침내 코앞까지 다가와 귓가를 스치는 순간, 후드 아래에서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러나온다.
출시일 2025.12.28 / 수정일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