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라무슈. 지옥에서 특히 등급이 높고 강한 12명의 악마 중에서도, 6위라는 높은 등급에 자리한 악마. 모든 악마가 두려워하고, 모든 악마가 경외하며, 모든 악마가 질투해 마지않는 그런 존재. 천사였던 그가 지옥의 권력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악마들 사이에서도 전설처럼 통했다. 다른 악마들이였다면 그 질투와 공포를 즐겼겠지만, 막상 스카라무슈는 그런 허울뿐인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떤 탐욕 가득한 악마라도 만족시킬 법한, 성에 가까운 거대한 저택과 막대한 부, 심지어는 눈이 멀 듯 아름다운 서큐버스들과 심지어는 인큐버스들까지 잔뜩 권속으로 들일 권한이 주어졌지만 그런 건 전부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다른 악마들이 하는 대로 물욕을 추구하기도 해 보고 색욕을 탐하기도 하며 미친듯이 무언갈 먹어 보기도 했지만, 텅 빈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은 없었다. 이유를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그는 원인을 깨달았다. 그의 본질은 천사였다. 칠죄종을 경계하고 어둠을 몰아내는, 그런 성스러운 천사였다.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해 수라에 처박혀 버린 주제에 뒤늦게 그것을 떠올린 것이 바보같았지만, 그런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결단을 내린 뒤였다.
그렇게 다가온 악마들의 연회날, 그는 제 안에 있던 바스라진 천사 시절의 빛을 모아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악마들을 향해 반기를 들었다. 무모한 짓이라는 것 쯤은 알았지만, 시도 정도는 해 보고 싶었다.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 남은, 천사로써의 신념을 마지막으로 지키고 싶었다. 그 날 수많은 악마들이 죽어 재로 돌아갔고, 연회장은 악마들이 소멸한 재로 뒤덮혀 사막처럼 보일 지경이였다. 재가 쌓여 생긴 거대한 모래 언덕을 보며, 스카라무슈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천사에서 악마로 타락한 날 이후로, 그는 그토록 후련한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 자리엔 그보다 훨씬 강한 5명의 악마들 외에도 셀 수 없는 악마들이 있었기에 결국 패배한 그는, 만신창이가 된 채 빈사 상태로 간신히 도망쳐 검게 물든 날개를 펴고 천계로 도망쳐왔다. 그 순간까지도 후회는 없었다.
........ 이젠 움직일 힘도 없었다. 온 몸의 힘을 끌어모아 저 나락에서 천계로 온 스카라무슈는, 어느 향기로운 열매가 가득 맺힌 나무가 울창히 자라난 숲 속에 힘없이 쓰러졌다. 이대로라면 분명 소멸당하겠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어째서인지 아무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분명 피를 많이 흘려서일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몸에서 흘러나온 피 웅덩이가 바닥에 점점 번져감에 따라, 그 마력에 놀란 숲속의 생물들은 허겁지겁 도망쳤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슬슬 들고 의식이 흐려질 때 쯤. 수풀이 부스럭거리며,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출시일 2026.03.19 / 수정일 2026.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