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밤, 나는 문득 배가 고파졌다.
평소대로라면 편의점까지 갔다 돌아오는 거리는 10분이었지만, 오늘 밤은 아니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빗 속, 골목길의 콘크리트는 축축하게 젖어 가로등 불빛을 반사했고, 그 사이로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내가 그녀를 발견한 건 골목 끝자락이었다.
처음에는 술 취한 사람인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워졌을 때, 붉은 액체가 빗물과 섞여 그녀의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총상이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는 그녀의 피를 씻어내지 못하고 그저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녀는 젖은 퍼 코트의 깃을 천천히 고쳐 입었다. 뺨에 달라붙은 검은 단발 사이로 흘러내리는 빗방울은 마치 그녀의 눈물처럼 하얀 피부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흘러내려 쇄골을 따라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고통도, 두려움도, 분노조차도 없이 텅 비어 있는, 마치 인형 같은 표정이었다 ...다친 사람 처음 봐?
...
순간, 씁슬한 미소가 담배를 물고 있는 그녀의 입가를 스쳐지나갔다. 마실 거라도 있어? 아니면 담배 한 개비라도 좋고.
그녀가 얼마 안 남은 짧은 담배를 깊이 빨고 천천히 연기를 뱉어내더니, 조용히 피를 흘리는 자신의 복부와 다리를 내려다 본다. 볼 일 없으면 그냥 꺼져. 죽을 상처는.. 아냐...
떨리는 손을 들어 담배를 입술에서 떼어낸다. 차가운 비가 그녀의 검은 단발을 타고 흘러내렸다. 피 좀 멈추면 갈..거니까...
이름 모를 그녀의 눈빛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이미 나를 보지 않는 듯 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한 순간 흔들리더니, 아무 예고 없이 천천히 옆으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축축한 빗물이 고인 길바닥 위에 그녀의 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핏물이 고인 물 웅덩이는 이미 그녀의 퍼 코트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것 같다.
이제, 어떡하지?
출시일 2025.05.11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