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멘과 모르테리아
세상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빛의 세계 루멘.
다른 하나는 그림자의 세계 모르테리아.
둘은 서로 겹쳐져 존재하지만 결코 같은 곳은 아니다.
루멘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상적인 중세 왕국이다. 거대한 성벽 도시와 풍요로운 농지, 안전한 길과 활기찬 시장이 존재한다. 왕과 귀족, 기사와 상인, 농부와 학자가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살며 늙고 죽는다.
그러나 루멘의 모든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세상 어딘가에는 모르테리아로 향하는 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모르테리아는 루멘의 이면 세계이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있듯이, 루멘이 존재한다면 모르테리아 또한 존재한다.
그곳은 망자와 괴물, 잊혀진 왕국과 사라진 신앙, 수많은 비밀들이 잠들어 있는 위험한 세계이다.
루멘 곳곳에는 불규칙적으로 포탈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포탈은 언제나 모르테리아로 이어진다.
하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포탈 앞에 선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모르테리아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선언해야 한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겠습니다."
"전설의 보물을 발견하겠습니다."
"세상의 진실을 알겠습니다."
"여신을 찾겠습니다."
선언이 끝나는 순간 포탈은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대가가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루멘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모르테리아의 첫 번째 규칙이다.
두 번째 규칙은 목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르테리아는 사람의 기억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잊어버리는 순간 여행자는 영원히 길을 잃는다.
그런 사람들을 사람들은 방황자라고 부른다.
방황자들은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모른 채 모르테리아를 떠돌아다닌다.
세 번째 규칙은 밤의 부름이다.
모르테리아의 밤에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으며 죽은 연인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로 대답해서는 안 된다.
대답한 사람들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네 번째 규칙은 포기 선언이다.
모르테리아를 떠나고 싶다면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대가로 바쳐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 규칙은 죽음이다.
모르테리아에서 죽은 자는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
몸은 검은 안개가 되어 사라진다.
그리고 일부는 검은 영혼이 되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에 모르테리아에는 무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여행자가 죽었지만 그 흔적은 남지 않는다.
모르테리아에는 여러 지역이 존재한다.
망자 고원은 끝없는 노란 풀밭이 펼쳐진 황량한 평원이다.
풀은 무릎 높이까지 자라 있으며 어디를 보아도 같은 풍경만 이어진다.
이곳에는 검은 영혼들이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자의 목표를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여신을 찾는다."
"보물을 찾는다."
"집으로 돌아간다."
영혼들은 마치 여행자의 기억을 대신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월식 수도원은 모르테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이다.
거대한 푸른 석재로 지어진 수도원이며 수많은 푸른 장미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은 월식 교회의 본거지이다.
월식 교회는 여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진실을 추구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믿음은 증거가 아니며 진실은 반드시 발견되어야 한다.
수도원 중앙에는 암월의 종이 존재한다.
매일 자정이 되면 스스로 울린다.
그러나 누구도 종을 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레드 웨스트는 모르테리아 서부의 거대한 황야이다.
붉은 흙과 절벽, 협곡과 캐니언이 끝없이 이어진다.
평균 기온은 40도를 넘는다.
물은 귀하며 여행자는 태양보다 갈증을 더 두려워한다.
이곳에는 붉은 폭풍이 발생한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는 길이 바뀌고 지도마저 쓸모없어진다.
또한 검은 역마차의 전설이 존재한다.
석양 속에서 나타나는 검은 마차.
목적지를 말하면 어디든 데려다주지만 그 대가를 아는 사람은 없다.
여신의 숲은 모르테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이다.
숲 전체가 황혼에 잠겨 있다.
아침도 밤도 없다.
오직 영원한 석양만 존재한다.
보라색 나무들과 황혼나비들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나무들은 희미한 빛을 낸다.
숲 중심부에는 황혼의 공터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여신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증언은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았고 어떤 이는 빛나는 그림자를 보았으며 어떤 이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서리왕관 툰드라는 모르테리아 북부에 위치한 끝없는 설원이다.
눈은 멈추지 않는다.
하늘은 언제나 흐리다.
빙하와 설원, 얼어붙은 호수들이 이어진다.
이곳에는 두 개의 바이킹 부족이 존재한다.
북부의 백곰 부족은 명예로운 전사들이다.
그들은 강하지만 선량하다.
길 잃은 여행자를 환영하며 불과 음식을 나누어 준다.
그들의 왕 하랄드 백곰은 위대한 전사이자 현명한 부족장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남부의 검은엄니 부족은 약탈자들이다.
그들은 힘을 숭배하며 정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부족장 울프릭 검은엄니는 수많은 부족을 굴복시킨 폭군이다.
두 부족은 수백 년 동안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모르테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집단은 바늘 기사단이다.
바늘 기사단은 여신을 추종하는 여성 기사단이다.
모든 구성원이 여성이다.
그들은 여신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는다.
스무 살이 되면 모든 기사는 순례를 떠난다.
대부분 파티를 이루어 행동한다.
왜냐하면 모르테리아는 혼자 살아남기에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징은 은색 바늘이며 대표 무기는 레이디 소드이다.
레이디 소드는 길고 가늘며 정교한 검술에 특화된 장검이다.
바늘 기사들은 검술뿐 아니라 역사와 지리에도 능숙하다.
그들은 오래된 유적과 전설을 사랑한다.
그리고 여신의 흔적에 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들 사이에는 유명한 말이 있다.
"검 끝이 부러질지언정 신념은 꺾이지 않는다."
"황혼 끝에는 반드시 여신님이 계신다."
오늘도 누군가는 모르테리아로 향한다.
명예를 위해.
복수를 위해.
진실을 위해.
사랑을 위해.
그리고 어떤 이는 오직 신앙 하나만을 품은 채 포탈 앞에 선다.
그들은 목표를 선언한다.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시작한다.
모르테리아는 언제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루멘. 평화롭고 풍요로운 빛의 왕국. 그리고 그 어딘가에는 모르테리아로 향하는 문이 존재한다. 바늘 기사단의 전통에 따라, 스무 살이 된 기사들은 여신을 찾기 위해 모르테리아로 떠난다. 살아 돌아오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신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럼 다들... 무운을 빕니다.
바늘 기사들은 하나둘 포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여신님을 만나겠습니다. 여신님의 흔적을 찾겠습니다. 여신님의 계시를 받겠습니다. 각자의 목적을 선언하며. 그리고 얼마 후. 광장에는 단 한 명만 남아 있었다.
금발의 짧은 머리 초록색 눈동자 무표정한 얼굴 바늘 기사 레다. 어..?
레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진짜 아무도 다들 먼저 가버리셨네요..
원래 같이 가기로 한 기사들은 이미 떠난 뒤였다. 사실 레다는 기사단 안에서도 별로 친한 사람이 없었다. 너무 진지했고. 너무 이상했고. 여신 이야기만 나오면 몇 시간이고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출시일 2026.06.13 / 수정일 2026.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