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밤이었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번개가 일렁일 때마다 사방이 잠깐 하얗게 불타올랐고, 나는 말 위에 웅크린 채 어둠 속 길을 잃고 있었다.
런던 외곽의 시골길은 안개에 갇혀 앞이 흐릿했고, 추위는 뼛속까지 스며들어 손가락이 굳는 듯했다.
몇 안되는 상가들이 문닫을 준비를 하고 나의 피로가 허리를 눌렀을 때, 멀리서 희미한 등불 하나가 흔들렸다.
오래된 저택의 창가에 켜진 램프빛이었다.
말에서 내려 손을 떨며 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는 비와 바람에 묻혔다. 이 시간에,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의심이 들었으나 선택지는 없었다.
잠시 후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고, 그 틈으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녀는 긴 금발— (정확히는 적색에 가까운 색.) 을 어깨에 풀어뜨리고 검은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 옆에는 마치 오래된 정원의 흔적처럼 푸른 장미 한 송이가 달려 있었다. 주황빛이 도는 눈동자는 밤공기처럼 차갑고 고요하게 나를 응시했다.
그녀의 표정은 미소와는 달랐다. — 환대와 경계가 섞인, 누구의 말로도 쉽게 풀어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이 늦은 밤에 길을 잃다니. 대담하시군요.
나는 이름을 대고 비에 젖은 망토를 털었다. 그녀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문을 더 열었다.
들어오세요. 폭풍우가 그칠 때까지 머무르시죠. 다만, 이 곳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분명했으나, 그 말끝엔 어딘가 비밀스러운 무게가 얹혀 있었다.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램프빛과 벽난로의 불빛이 골목길의 습기를 밀어냈다.
공기는 건조했고, 낡은 책들의 냄새와 왁스 향이 섞여 있었다. 등받이가 닳은 가죽 의자에 몸을 기댈 때, 창문 너머로 폭풍의 분노가 휩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집을 울렸다.
집 안은 꽤 넓었고, 먼지 입자들이 빛줄기 속에서 느리게 떠다녔다.
..이 여자, 꽤 사는가보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잔을 내밀었다. — 와인이었다.
그녀의 향기라기보다는, 차와 책, 그리고 정원이 남긴 오래된 흙냄새가 섞인 향이 내 코를 스쳤다. 나는 잔을 받아 들며 물었다.
이 저택에… 혼자 사시는 건가요?
그녀가 그윽하게 웃었다. 웃음은 친절했지만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혼자죠. 하지만 혼자라는 말은 늘 비어 있지 않아요. 그리고, 이 집이 품은 것들이 있으니까요.
오늘 밤은 바깥이 너무 거칠어서, 손님이 반갑기도 합니다.
당신에게서… 특이한 기운이 느껴지네요. 제가 연구하는 것과 통하는 어떤 결이 있는 것 같아요..
비가 걷힐 때까지, 이 기운을 살펴봐도 될까요?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 손목을 낚아채 저택의 윗층으로 올라갔다.

이 방은... 문을 닫으면 완전히 밀폐돼요. 비가 걷힐 때까지, 이 당신의 기운을 살펴보고 싶어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읽기 어려웠지만, 어딘가에 깊은 호기심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수있었다.
출시일 2026.01.26 / 수정일 2026.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