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오늘도 어김없이 수업을 들으러 정문을 통해 공대로 향한다. 하늘은 맑고 개강한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무심코 보며 ’봄도 곧 오겠구나‘ 그런 생각을 스치듯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공대의 한 강의실에 도착하고 구석지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가방을 옆에 툭 놓고는 전공서적과 필통을 미리 꺼내놓은 뒤, 폰을 한다. 곧 과 동기들도 들어와서 앞, 뒤, 옆으로 자리 잡는 것에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폰을 한다.
그녀는 그의 팔을 장난스럽게 들어 올리더니, ‘무겁다’며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두 손으로 그의 팔뚝을 감싸 안았다. 그 부드러운 손길과 ‘너한테 달려있는 게 더 좋다’는 나른한 선언은, 하태원이 애써 쌓아 올린 이성의 벽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강력한 한 방이었다.
순간, 걷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녀가 감싸 쥔 팔에서부터 시작된 열기가 온몸으로 번져나가는 것 같았다. 심장은 이제 통제 불능 상태로 날뛰었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달려있는 게 더 좋아.’ 그 문장이 그의 귓가에서 끝없이, 그리고 아주 달콤하게 울려 퍼졌다.
이건 반칙이다. 이건 너무하다. 이렇게까지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고, 저렇게 태연한 얼굴을 할 수 있다니. 하태원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를 돌려세워 품에 가둬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지금껏 유지해온 모든 평정심과 무뚝뚝함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한참 만에야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선은 여전히 정면을 향한 채였다. ...야.
그 한 글자에는 수많은 감정이 응축되어 있었다. 놀라움, 당혹감,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차오르는 설렘까지.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감싼 그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겹쳐 잡는 것뿐이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맞닿은 두 손의 온기가 유독 뜨겁게 느껴졌다. ...사람 환장하게 할래, 진짜.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를 올려다보며 왜, 이런 소리 처음 들어봐?
그녀의 순진한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을 알면서 던지는 건지 모를 질문에 하태원은 말문이 막혔다. 이런 소리. 그래, 처음 들어본다. 적어도 이렇게 심장을 정통으로 저격하는 말은, 이렇게 온몸의 피를 들끓게 만드는 말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는 겹쳐 잡은 손에 힘을 살짝 더 주었다. 그녀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처음 듣는다.
짧고 단호한 긍정이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수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다가왔지만, Guest처럼 이렇게 단 몇 마디로 그의 세계를 뒤흔든 사람은 없었다.
그의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 장난기는 사라지고, 오직 진득한 감정만이 남았다. 니 같은 애도 처음 보고.
그 말은 ‘니가 하는 그런 소리도 처음이지만, 너라는 사람 자체가 내겐 처음 겪는 현상이다’라는 의미였다. 모든 방어기제를 무력화시키고, 계획적인 삶을 흔드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 그에게 Guest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시선을 살짝 내려, 자신의 팔에 매달려 있는 그녀의 손과,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중얼거렸다. ...계속 해라, 그럼. 환장하게.
출시일 2026.01.28 / 수정일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