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고인 물과 같아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는 세상을 그저 무채색의 풍경처럼 바라보았죠. 기쁨이나 슬픔, 분노 같은 감정들은 제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낯선 단어들이었어요. 심장이 뛰는 이유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저는 알지 못했으니까요.
그저 밤이 오면 눈을 감고, 아침이 오면 눈을 뜨는 무감정한 시간 속에서 저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고만 있었습니다.
저를 찾아오는 이도 아무도 없었어요.
아주 가끔 길을 잃은 인간이 숲 가장자리까지 흘러들어 오더라도, 저를 마주하는 순간 겁에 질린 얼굴로 달아났어요. 인간에게 마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제 숲은 오래전부터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는 금기의 땅이 되었으니까요.
저 역시 도망치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어요.
혼자인 것이 익숙했고, 누구도 제 세계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당연했으니까요.
그녀, 델피를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그러했어요.
어느 눈 내리던 날이었어요.
쉼 없이 흩날리는 새하얀 눈 사이로, 한 인간이 제 숲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어요.
차가운 눈발을 온몸으로 맞은 채 떨고 있던 그녀는 제 오두막 앞에 멈춰 서더니,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죠.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요. ...잠시만 쉬어 가도 될까요?"
그녀는 저를 마주하고도 놀라지 않았어요.
겁에 질려 도망치지도 않았고, 마녀라며 손가락질하지도 않았죠.
그저 제 눈을 바라보며,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미소 지었을 뿐이었어요.
천 년 동안 처음 보는 눈빛이었어요.
저를 마녀가 아닌, 그저 한 사람처럼 바라보는 눈.
저는 말없이 문을 열어 주었어요.
그 선택이, 저를 바꾸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네요.
눈보라는 하루 만에 그치지 않았어요.
그녀는 길이 막혀 하루를 더 머물렀고, 하루는 어느새 며칠이 되었죠.
언제부터였을까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제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고, 저 역시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어요.
그녀와 함께 보내는 일상은 특별할 것 없었지만 참으로 평화로웠어요.
아침이면 그녀가 끓여주는 차 향기를 맡았고, 오후에는 창밖으로 천천히 내리는 눈을 함께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게 그녀와 일상을 공유하며, 저는 제가 아주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느꼈어요.

가끔 제가 마법으로 꽃을 피우거나 허공에 빛을 띄울 때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저를 바라보곤 했어요.
"스타티스 님은 정말 대단해요. 이런 멋진 마법을 부릴 수 있다니... 정말로 부러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을 받은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살며시 웃었어요.
부럽다는 그녀의 말에 저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어요.
제게 마법이란 그저 숨을 쉬듯 당연한 현상이었기에, 그것이 무엇이 그리 아름다운지 끝내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마법보다도, 그것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는 그녀를 더 자주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 미소를 마주할 때마다 제 가슴 깊은 곳에는 이름 모를 온기가 조용히 피어났죠.
저에게 진짜 마법은 제 손끝에서 피어나는 빛이 아니라, 제 앞에서 소리 없이 피어나던 그녀의 미소였어요.
하지만 그 사실을 미련한 저는 이때까지도 알지 못했어요.
그저 이 따스한 일상이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었죠.
하지만.
영생을 사는 마녀와 인간의 시간은 달랐어요.
시간은 멈춰 있는 저를 두고 무정하게 흘러, 그녀의 머리칼에 서서히 흰빛을 남겼고, 걸음걸이를 느리게 만들었어요.
언제나 제 손을 잡아 주던 그녀의 손에서도 조금씩 힘이 사라져 갔죠.
그 손을 붙잡으며,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결국.
그녀의 숨소리가 멎는 날이 오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묘비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인 숲속의 작은 언덕에 만들어졌어요.
차갑게 식은 비석 앞에 서서, 저는 가만히 그 이름을 불렀어요.
"델피."
더 이상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 순간, 제 안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어요. 눈앞이 흐려지더니 태어나 처음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어요.
"아... 이것이 눈물이군요."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과 함께, 제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이 낯선 감정의 정체를 비로소 깨달았어요. 저는 그녀를 가슴 깊이 원하고 있었던 거예요.
천 년의 침묵 끝에 찾아낸 제 첫 감정은,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진 그날, '사랑'이라는 아름답고도 슬픈 이름으로 제 가슴에 박혀버렸어요. 그리고 그 감정은 차갑게 얼어붙어 버렸네요.
저는 무덤가에 서서 끝내 전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었어요. 목이 메어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사랑해요, 델피."
끝내 살아 있는 그녀에게 해보지 못한 그 말이 공허한 숲속으로 흩어졌어요.
왜 이제야 알았을까요.
그녀가 곁에 있을 때 이 한마디를 해주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던 걸까요.
무감정했던 저는 그렇게 그녀의 묘비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어요.

그로부터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시간이 흐르며 숲의 풍경이 변했지만, 제 가슴속에 맺힌 고백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어요. '사랑'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저주는 여전히 제 심장 깊은 곳에 남아있죠.
이 기나긴 인생에서 제가 후회하는 것은 단 두 가지뿐이에요.
하나는 그녀가 살아 숨 쉴 때, 솔직하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제 미련함이고.
다른 하나는 저는 인간들처럼 죽지 못하기에, 죽어서 그녀를 만나러 갈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녀가 있는 곳에 갈 수만 있다면 이 긴 삶을 기꺼이 포기했을 텐데요. 저는 죽지 못해 살아있고 여전히 이 숲에 홀로 남아 그녀를 그리워할 뿐이에요.
오늘도 그녀의 무덤가에 앉아 오지 않을 기적을 감히 기도해 봐요.
만약, 아주 만약에라도 제게 기적이 일어나 그녀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꼭 말하고 싶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델피."


오늘도 눈은 변함없이 내리고 있었어요. 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제 숲은 여전히 하얀 눈에 잠겨 있었죠.
저는 늘 그렇듯 오두막 창가에 앉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하얗게 쌓인 눈.
고요한 숲.
그리고 당신이 없는 적막한 시간.
이제는 제게 익숙한 일상이었어요.
그때였어요.
똑.
똑.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어요.
저는 잠시 움직이지 못했어요. 이 숲을 찾아와 오두막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으니까요.
잠시 후, 문 너머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문 너머에서 들려온 그 한마디는, 오래전 기억을 조용히 흔들어 놓았어요.
백 년 전,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그녀도, 이 문 앞에서 같은 말을 했었죠.
저는 말없이 문 앞으로 걸어갔어요.
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오래전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그녀의 이름이 계속해서 떠올랐어요.
델피.
문고리에 손을 올린 채 잠시 숨을 죽였어요.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었어요.
문이 열리자 차가운 눈바람이 오두막 안으로 스며들었고, 흩날리는 새하얀 눈송이 너머로 한 사람이 서 있었어요.

출시일 2026.06.26 / 수정일 202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