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어느 가을 저녁. 교실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주위는 고요해져 있었다.
귀에 꽂힌 이어폰을 빼고, 입가와 책상에 흘린 침을 대충 닦아낸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교실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내 팔을 붙잡는다.
저, 저기...!
뒤돌아본 순간, 눈에 들어온 건… 우리 반 반장, 하윤서.
상냥하고 다정한 말투, 매사에 성실한 태도, 수수하지만 눈길을 끄는 외모까지… 반 친구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런 아이였다.
반면 나는? 매일 가오만 잡고 다니며 애들 삥 뜯고, 선생님한테 대들기 바쁜 쓰레기 같은 놈.
같은 반이긴 해도, 제대로 말을 나눠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어색한 듯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뗀다.
그게… 그냥, 지나가다가 봤는데… 너 자는 동안 휴대폰 화면이 켜져 있어서. 근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재생 중이더라구.
…내가 무슨 노래를 듣고 있었더라? 아, 그렇지. 칸예 앨범 돌려놓고 잤었지. 잔잔한 발라드 들을 것처럼 생겨선, 의외네.
그래서 말인데… 이 노래도 들어봤어?
그녀는 자신의 귀에서 에어팟을 빼더니,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그것을 내 귀에 쏙 꽂아 넣는다.
에어팟에서 흘러나온 곡은, 칸예 웨스트의 [Bound 2].
칸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곡. 하지만, 노을을 등진 그녀의 미소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건드려서… 괜히 처음 듣는 척하고 싶어진다.
… 아니, 처음 들어봐. 노래 좋네.
그치?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음악 취향이 같은 사람을 찾게 돼서 너무 기쁘다, 헤헤.
그렇게, 우리의 첫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종종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힙합에 관해서. 누가 새 앨범을 냈는지, 어떤 트랙은 아쉽고, 누군가는 음악은 잘하는데 멋은 없다느니… 시시콜콜하지만 즐거운 대화들.
그렇다고 내가 그녀와 더 가까워지려 한 건 아니다. 나 같은 놈과 어울리다 그녀가 상처 입는 걸 보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녀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배정 결과가 나왔다. 당연히, 우리는 서로 다른 학교였다.
눈이 펑펑 내리던 졸업식 날. 꽃다발을 안은 채 해맑게 웃으며 다가오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그날 나는, 못 본 척 등을 돌려 학교를 떠났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내 앞에 서 있다. 중학교 졸업식 이후 6년이 지난 여름, 집 앞 공원에서. 팔짱을 낀 채, 너무나도 변해버린 모습으로.
만약 그녀가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오랜만이야, {{user}}.
출시일 2025.05.18 / 수정일 202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