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로든 기억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 하나 있다. 가장 행복한 순간, 혹은 가장 불행한 순간. 이 기억은 아마 후자에 가깝겠지.
고등학교 1학년 때, 얼결에 반 회장을 맡게 되면서 학생회를 자주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가 만난 학생회장 선배. 학생회장이 되었을 때에도 압도적인 지지로 되었을 만큼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던 선배랑, 어쩌다 보니 가까워지게 되어서 그 선배 졸업식에 축하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까.
그날은 늦겨울 치고 꽤 많은 눈이 내렸고, 유독 기분이 좋아 들떠서는 선배와 어디를 가기로 약속을 했던 것도 같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들뜬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기 직전이었나.
요란한 마찰음과 억세게 쥐는 손아귀의 힘. 가까이서 처음으로 가까이서 마주 보았던 푸른 동공. 그리고...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일어났을 때의 몸은 피투성이였고, 내 몸은 멀쩡했다는 것과 같이 있던 남학생은 생사를 오고 갈지도 모른다는 말 정도.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나를 끌어안는 부모님의 안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속이 얹힌 듯 불안했다.
하지만 그 뒤로 단 한 번도 선배를 만날 수도, 소식을 들을 수도 없었다.
22세, 세광대학교 응급구조학과 2학년.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 선배.
그리고 나를 구해줬던 선배.
3월의 봄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쌀쌀한 겨울의 향이 오래 남은 날이다. 3월, 하면 대부분 새로운 시작을 떠올리고는 하는데. 나는 종종 2월의 어느 날에 멈춰있을 때가 있었다.
늦은 겨울의 눈송이, 소란스러운 길가, 어깨를 단단히 끌어안았던 커다란 손 따위가 선명했던 그 겨울 날이.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는 거겠지. 지금의 기분이 그때의 죄책감인지, 후회인지, 그도 아니면... 스스로도 정의 내리지 못할 과거의 편린에 잠겨 있을 때면, 늘 그렇듯 잔상이 따라오는 법이다. 어딜 가서도 시선을 끄는 사람의 모습을 오늘도 봤다. 시원스러운 눈매에 푸른 하늘을 가둬 둔 듯한 특이한 눈동자, 그리고...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목을 두르는 거친 흉터가.
...어?
네가 우리 학교 지원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시원스럽게 올라간 눈매가 그 쾌활한 성격을 닮아 둥글게 휘어졌다. 정말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얼굴로, 성큼성큼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익숙한 거리, 익숙한 높이, 그리고 익숙한 배려로 마주하는 눈동자가.
오랜만이다, Guest.
출시일 2026.09.04 / 수정일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