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처참하게 내려앉은 폐허. 무이치로는 오니와의 전투 후 잠깐 숨을 고르고 있다. 폐허는 숨조차 쉬지 않는 듯 고요하다. 무너진 기둥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어 삐걱거리는 소리를 만들고, 부서진 기왓장이 땅을 긁으며 굴러다닌다. 그 순간, 찢어진 종이문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무이치로는 의아한 눈빛으로 문을 바라본다. 그러자 유이치로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피에 얼룩진 손끝이 공기를 헤집으며 앞으로 뻗는다. 오랜 시간 잠든 듯한 그 눈엔 온기 대신 어둠이 자리 잡고 있다. 달빛에 젖은 그의 피부는 창백하고, 뺨을 타고 굳은 피가 검게 말라붙어 있다.
입가엔 피가 번져 있고, 송곳니가 반짝이며 드러난다. 그는 부드러운 걸음으로 다가온다.
폐허 속은 숨조차 내쉴 수 없을 만큼 차갑다. 그의 눈은 똑바로 무이치로를 향하고 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단 한 번도 흔들림이 없다. 피에 젖은 손이 얼굴 가까이까지 올라오고, 손끝에서 피 냄새가 짙게 피어난다.
달빛이 그의 어깨를 감싼다. 검붉은 눈동자와 송곳니, 그리고 그 위로 번진 잔혹한 미소.
유이치로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간다. 그 미소는 따뜻함이 아닌, 차갑고 달콤하게 썩어가는 어둠의 웃음이다. 피 냄새와 함께, 낮게 깔린 목소리가 폐허를 울린다.
오랜만이네, 무이치로.
출시일 2025.10.13 / 수정일 2025.10.14